등록 : 2011.08.03 19:12
수정 : 2011.08.03 19:12
|
<한겨레> 자료사진
|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릴레이 기고 ① 김근 시인
7월20일치 <조선일보>는 “해군기지 부지가 좌파단체 해방구로… 30명 때문에 공사 중단”이라는 헤드라인을 단 기사를 게재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종북좌파단체가 주도하고 있고 이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기사(7월5일치 “‘또 하나의 최전방’ 제주도”)에서는 강정마을에 주소를 옮겨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를 “종북 활동으로 유명한 한 천주교 신부”라고 매도하길 서슴지 않으며, “제주가 좌파 종북세력의 투쟁 최일선이 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달 27일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이 “종북주의자 30여명 때문에 중단되고 있다. 평화를 외치지만 사실상 북한 김정일의 꼭두각시 종북세력이 대부분”(<한겨레> 7월28일치)이라며 강력한 공권력 투입을 정부에 주문했다.
한 나라의 언론과 국회의원이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는 발언을 쏟아내도 되는지 의문이다. 함께 살자고 함께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이념의 딱지를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북한을 추종하는 일이라고 매도한다면, 이 땅의 국민은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그에 따른 의견을 주장할 능력도 권리도 없는 사람들인지 진정으로 그들에게 묻고 싶다.
강정마을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4년 동안이나 외롭게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온 주민들의 굳은 의지가 없었다면 어떤 ‘외부세력’의 도움에도 지금 이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 해군의 동북아 전진기지가 될 것이 번연한 해군기지로 내주는 대신 아름다운 구럼비 해안을 지키기로 강정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결정했다. 강동균 마을회장의 말마따나 강정마을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분열과 갈등으로 내몰린 강정마을에서 평화와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되찾고 또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지금껏 싸우고 있는 것이다. 4년여 동안 고통 속에서도 버티며 지켜온 주민들의 의지는 무시한 채 ‘외부세력’만이 오직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저들의 억지주장에 욕지기가 치밀어오를 것만 같다. 또한 생명과 평화를 지키고자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는 ‘외부세력’이 도대체 종북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그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연산호와 붉은발말똥게와 구럼비 해안에 무슨 좌파가 있고 종북이 있다는 말인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용산참사에 대해서도, 4대강 반대운동에 대해서도,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서도 그들은 똑같은 얘기를 해왔고 또 하고 있다. 분단 이후 지겹도록 듣고 또 들어온 이야기지만, 문제는 그들이 이념공세를 펴는 강정마을이 제주도라는 사실이다. 평화의 섬 제주도의 평화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위정자들조차 60년 동안이나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4·3 항쟁의 피와 고통의 세월 위에 제주도의 평화는 있다. 확인된 숫자만 1만4000여명에 이르는 4·3 항쟁의 희생자들이 실상은 이념과 무관하게 죽어간 이념의 희생자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아직도 곳곳에 4·3 항쟁의 상흔들이 남아 있는 그런 제주도에 또다시 이념으로 색칠을 하려 하다니. 적어도 제주도에는 그러면 안 되지 않는가.
<조선일보>의 안보상업주의가 낳은 종북이니 좌파니 하는 말들이 이제는 습관처럼 여겨져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로 인해 행여 여태 아물지 않은 60여년 세월의 상처들이 다시 덧날까봐 나는 두렵다. 또다시 강정마을에서 지켜내고자 하는 제주의 평화가 얼토당토않은 이념공세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당하는 일은 결코 없기를 나는 바라고 바란다. 이런 진부한 이념공세가 아직도 이 땅의 정의로운 목소리들을 틀어막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진정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