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14 19:43
수정 : 2011.10.14 19:43
10월5일치 논쟁 ‘시민단체가 재벌 기부금을 받아서는 안 되나?’ 를 읽고
한동우 강남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이번 논쟁의 핵심에는
기업과 비영리조직의 관계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박원순씨가 상임이사로 재직했던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가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것이 ‘느닷없이’ 정치쟁점화되고 있다. 이 논쟁이 순전히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한국 정치풍토의 후진성을 개탄하는 데서 그칠 일이지만, 이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무 혹은 시민사회와 비영리조직에 대한 지식과 성찰이 모자란 데서 오는 논리박약 때문이라면 일단 점화된 논쟁거리에 대해서 정리가 필요하다.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기업으로부터 공익적 기부금을 모금하는 것은 도덕적 이율배반이 아니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는 기업이 주주들만의 배타적 소유물이 아닌,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기업은 임직원과 소비자들은 물론이고, 협력업체·지역사회·국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생태계 속에 존재한다. 기업이 아름다운재단을 포함한 공익적 비영리조직에 기부금을 내는 것은,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건강한 지배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재벌기업들의 부도덕을 지적하면서 이들이 사회적으로 최소한의 책무를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부도덕하게 벌어들인 돈은 여전히 부도덕한 순환고리 속에서만 맴돌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비영리조직들은 재벌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아름답게’ 세탁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논쟁의 핵심에는 기업과 비영리조직의 관계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기업에 비영리조직은 일방적 자선의 대상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비영리조직에게 기업은 정서적 호소에 기반한 앵벌이의 대상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기업과 비영리조직의 관계는 협력과 제휴를 기반으로 하는 전략적 상생관계에 가깝다. 실제로 아름다운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대기업들은 거의 모두 사회공헌 전담 조직이나 인력을 배치하고 있으며, 이 전문화된 조직과 인력을 바탕으로 비영리조직들과의 협의를 거쳐 기부금의 규모와 용도를 결정해 왔다.
기업과 비영리조직의 협력은 궁극적으로 국가 전체의 역량을 성숙하게 한다. 본래 정치조직으로서의 국가는 국민의 보편적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국가의 정책 결정은 국민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반영하기보다는, 종종 중위투표자들(median voters)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설계되는 것이 보통이다. 비영리조직들은 때로는 이러한 국가의 역할을 보완하면서, 때로는 국가가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주변적 요구들에 대해 창의적이고 선도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역량이 커지는 것은 사회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복지’가 가장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학계와 정치계에서는 한국 사회에 부합하는 복지국가 모형을 제안하는 이른바 복지국가 백가쟁명이 일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닮으려고 하는 선진복지국가들의 공통점은 신뢰와 규범, 그리고 호혜성의 원칙이 튼튼하게 작동하는 시민사회가 밑바탕에 있다는 것이고, 튼튼한 시민사회는 사회적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개인과 비영리조직, 그리고 기업들에 의해 지탱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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