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10.19 19:44 수정 : 2011.10.19 19:44

이정훈 원자재 트레이더·경기도 고양시 덕은동
공업으로 경제가 지탱되는 독일은
여전히 건재한 반면 첨단(?) 금융으로
살아가던 국가들은 위기에 처했다

‘얇은 손 하이얀 면티는 고이 접어서 공밀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학위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안습 정작으로 고달퍼 서러워라.’

‘승무’로 유명한 조지훈 시인은 1939년 일제 치하와 조선조에서 사상의 폐습으로 학대받던 승려계층, 그중에서도 하류계층으로 멸시당하던 여승의 춤을 통해서 슬픔과 한의 정서를 드러낸 바 있다. 지금은 다르다. 승려라면 사회의 존경을 받는 직업이고 또한 청빈함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만일 조지훈 시인이 지금 살아있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시를 썼을까? 혹여 ‘공돌이’로 불리우며 박대(?)당하는 공학도의 슬픔을 그린 시를 ‘격무’라는 제목으로 적어내리지 않았을까?

시 속에 ‘공밀레’ 소리가 울린다고 한다. 한국의 자존심인 휴대전화나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갖는 최첨단 무기를 두드리면 ‘공밀레, 공밀레’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당연히 이는 에밀레종 설화의 패러디이다. 에밀레종을 두드리면 종을 만들 때 희생된 아이의 한이 서려 ‘에밀레, 에밀레’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야근과 철야를 불사했던 엔지니어들의 고통과 한이 서려 아마도 ‘공밀레, 공밀레’ 소리가 난다는 것이리라. 한국은 전형적인 공업주도형 수출국가이다. 대한민국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산업은 건설·철강·화학·반도체·자동차·전자제품이며, 대한민국 공학도의 실력과 열정 역시 세계 수준급이다. 하지만 한국의 공학도들은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요즘 유럽 경제위기로 시끄럽다. 사실 유럽 경제위기는 단 하나이다. 공업의 위기이다. 공업으로 경제가 지탱되는 독일은 여전히 건재한 반면, 이른바 첨단(?) 금융의 힘으로 살아가던 다른 국가들이 큰 위기에 처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돈은 빌리면 되지만, 그것은 반드시 실물로 갚아야 한다. 실물이 전제되지 않은 금융은 사실 어린이가 도화지에 그린 1000억원짜리 위조지폐와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공업이 진짜 재화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창구라는 뜻이다. 문화와 예술은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발전시키지만,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물질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나라에서 문화적인 대부흥이 일어난 역사는 없다.

국가 단위에서 공업의 불길이 꺼지면 그 불씨를 다시 잇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미국의 유에스스틸에서 제조한 물건을 썼다. 어린 나에게 유에스스틸은 미국 강철문명의 영원한 부흥의 상징과도 같았다. 지금 유에스스틸의 조강능력은 무려(?) 세계 10위이다. 더 무서운 것은 신일본제철이나 포스코 역시 그 길로 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공밀레’나 울린다면 공업의 진보와 발전도 없을 것이고, 우리도 몰락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금융과 문화 그리고 유통은 산업의 가장 중추적인 갈비뼈이다. 우리 마음을 감싸주고 골격을 만들어주는 든든한 뼈대이다. 하지만 그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자 척추는 공업이다. 이러한 이유로 물질가치 즉,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공학도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단지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혜택과 사회적인 존중과 인식으로 말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