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1 18:50
수정 : 2011.10.21 18:50
이명박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국 내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미국 정치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을 전례 없이 빨리 처리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국 내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이번에 미 의회를 통과한 이행법안 102조는 협정과 미국법이 저촉되는 경우 미국법이 우선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어떠한 개인도 협정문을 근거로는 미국 법원에 권리주장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이뿐 아니라 미국 연방정부나 주정부, 소속 기관이 협정을 위반하더라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뭐 이런 법이 다 있나? 자유무역협정은 두 나라간 약속인데, 미국은 이를 자기 안방에서는 휴지 조각이라고 선언한 셈이지 않은가?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우리 헌법 6조 1항이 그렇게 정하고 있다. 이런 불평등을 문제 삼자, 외교통상부는 보도자료를 내어 양국의 법체계가 달라서 그렇다고 해명한다. 언론들이 잘 몰라서 사실을 오도한단다. 그러나 정작 법체계를 모르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펴는 쪽은 외교부다.
국제법과 국내법의 관계는 양자를 하나의 법률 체계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일원론과 이원론으로 구분된다. 일원론에 따르면 국제법은 국내에 바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이원론 체계에서는 국제법은 국내에 바로 적용되지 못하고 어떤 변형을 거쳐야 한다. 미국의 이행법이 바로 이 변형 조처다. 한국은 헌법에서 국제법을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고 했으므로 변형 절차 없이 바로 적용된다는 것이 외교부 반론의 요지다.
이 반론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두가지다. 첫째, 헌법만 놓고 보면 미국도 일원론 국가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상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 체결한 조약은 연방 법률로서 효력을 인정한다. 일원론의 근거로 삼는 우리 헌법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을 왜 이행법으로 처리하나? 이건 일종의 편법이다. 미국은 건국 초부터 150년 넘게 헌법 규정에 따라 조약을 체결해 왔으나, 2차 세계대전 뒤에는 대부분 조약을 의회와 행정부 간 협정이란 편법으로 처리했다. 상원 3분의 2 동의를 받는 것보다 양원 단순과반 동의를 받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통상 관련 조약은 예외 없이 이런 식이었다. 이 때문에 위헌 시비가 붙기도 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이 이행법 형태로 처리되자 미국 금속노조가 위헌소송을 제기했는데, 미국 법원은 나프타가 헌법에서 말하는 조약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미국 헌법에 이를 판단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면서, 이런 정치적 행위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물러섰다.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이행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법체계의 차이 때문에 당연하다는 외교부의 해명은 그래서 더 근거가 없다.
둘째, 미국이 이원론 국가라고 해도 이행법에서 협정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행법을 이원론 체계의 변형 조처로 본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국내법으로 수용하는 선언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행법에서 협정의 국내 효력을 전면 부정하고 누구도 협정을 근거로 미국 내에서 권리주장을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일원·이원론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을 무시하는 미국 예외주의, 미 의회 우월주의의 문제다.
미국은 국제조약을 위반했다는 국제기구의 판정을 받고도 국내법을 고치지 않고 버젓이 두는 대표적인 나라다. 한국 정부는 미국 예외주의를 옹호하려고만 들지 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이 미국의 의무를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우리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지 조사해서 국회에 성실히 보고부터 해야 한다. 이행법 초안이 공개된 것이 올해 3월인데, 아직까지 정부는 이런 기초적인 업무는 하지 않고 불평등 문제 지적에 어깃장이나 놓으려 하고 있다.
남희섭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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