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4 19:34
수정 : 2011.10.24 19:34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탐욕적 금융자본에 반대하는 시위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결국 우리나라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주식가격이 우리 국내 실물경제와는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 그리스를 포함한 남부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해결 전망과 관련한 일희일비하는 뉴스에 널뛰기를 반복하는 상황에 미국발 반금융시위가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듯한 투기적 금융산업에 의하여 확대재생산되는 근자의 금융위기 및 재정위기와 관련한 현 집권층의 퇴행적 대응이다. 금융산업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혈관과 같은 필수적인 존재이다. 즉 에너지가 필요한 신체 모든 부분에 영양소를 포함한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과 같이, 금융산업은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고효율 산업에 자원이 투자되도록 하는 혈관으로서의 구실을 하는 자본주의체제의 필수불가결한 산업이다.
따라서 미래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산업을 정확히 예측하여 그 산업에 자원이 집중 투자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금융산업은, 당연히 건강한 심장과 혈관에 돌아가야 할 칭찬과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을뿐더러, 그러한 대접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 한편 미국의 주요 금융자본들과 우리나라의 금융자본들은 과연 이러한 자원의 최적배분을 가능하게 한 공로의 대가로 직원들의 연봉이 억대를 상회하고 있는 것인가?
부끄럽고 창피한 노릇이다. 투자금융기관들은 효율적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굴해서 자본을 제공하기보다는 투기적 자산거래를 통하여 자산가격을 왜곡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또 자칭 최고 엘리트들이, 신용평가능력이 없는 바보들만이 하는 담보대출에만 매달리면서, 단지 금융업 허가를 받은 특권층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율의 예대마진으로 최고의 수익률을 올렸다고 자랑하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부끄럽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보수언론과 현 집권층이 합심해서 이런 왜곡된 자본주의체제가 초래한 과오를 본질적으로 고치는 노력 대신에, ‘따뜻한 사회’라는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는 ‘기부문화 조성’이라는 미봉책으로 문제해결을 회피하려는 범국가적인 분위기이다. 심지어 아무런 행정적 실권을 갖지 못한 ‘균형성장위원회’란 조직을 만들어 ‘기부문화 조성을 위한 문화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는 것이 현 집권층의 가장 중요한 균형성장 정책임을 보면 이 정권의 ‘균형성장’이라는 수사가 더욱 부담스럽다.
좋다. 대통령과 보수언론들의 주장처럼 모든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감동적인 기부’를 했다고 치자. 이러한 재벌들의 ‘감동적 기부’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해결책으로서는 그 규모뿐만 아니라 제도적 실효성 차원에서 아무런 사전 검토와 보장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부 클럽’에 가입한 선한 분들의 영혼의 평안함보다도 일할수록 더욱 빈곤해지는, 그래서 생존의 위기로 내몰린 대다수 서민들이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다.
작동하는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은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에게 베푸는 선행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 가진 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갖도록 기초교육 및 직업재교육을 제공하고, 직업을 찾을 때까지 과도기에는 생존을 보장해주는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은 부자들의 선행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공공재를 제공하는 것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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