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02 19:23
수정 : 2011.11.02 19:23
이수범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장기간 무법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정치권과 방송통신위원회에
일차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교착상태에 빠진 미디어렙 입법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야는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미디어렙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서 원만하게 합의하여 처리되면, 정책 당국에서는 관련 시행령을 만들고 사업자를 공고할 것이다. 그러면 희망 사업자는 사업허가를 획득하여 정상적으로 광고영업에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국회의 입법 과정이 진행되기도 전에 <에스비에스>(SBS)의 지주회사인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는 10월27일 이사회를 개최해 자본금 150억원 규모의 광고판매 대행사 ‘㈜미디어크리에이트’를 만들어, 미디어렙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는 미디어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회의 광고 관련 입법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우선 입법 논의의 범위 안에서 민영 미디어렙을 설립하였다고 한다. 이는 표면적으로 종합편성채널이 시장에 진입하면 지상파 방송이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지난 10월11일 국회 토론회에서, 종합편성채널이 시장에 진입하면 가장 우려되는 매체는 기존의 케이블 텔레비전, 기타 매체, 옥외 매체, 인터넷 등이며, 오히려 지상파 방송은 다른 매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0월20일 한국광고주대회에서도 종합편성채널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케이블 텔레비전과 신문이 피해를 많이 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만큼 지상파 방송의 시장 지배력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스비에스>의 논리는 대부분의 연구 결과에서 지지되지 못했다. 이는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 영향력이 아직까지는 지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2008년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렙 관련 결정 요지를 보면 “방송의 편성과 제작을 광고 판매와 분리하는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며, 미디어렙을 허가제로 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된 관련 모든 법률안들이 미디어렙은 허가제로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에스비에스>와, 그와 특수관계에 있는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가 미디어렙을 직접 설립하여 운영하겠다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고 정책 당국으로부터 정식으로 허가를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는 미디어렙 설립을 강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스비에스>가 지상파 방송의 판매제도가 제대로 정비되기도 전에 영업을 시작하면 <문화방송>(MBC)도 본격적인 자사 미디어렙 설립 행보에 나설 것이고, 지상파 방송 시장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상파 방송이 위기라고 해도 다른 매체에 비해 아직 영향력이 있으며,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서 현재 논의중인데 이를 무시하고 민영 미디어렙 설립을 감행하는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의 조급함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렇게 <에스비에스>가 종합편성채널의 출발을 틈타 직접 영업에 나서는 것은 자사 이기주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방송광고공사의 독점체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3년이 지나도록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이달 초 열린 국회 문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도 여야는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방관할 수만은 없다는 입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이 과정에서 장기간 무법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정치권과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일차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방통위는 2009년 12월 ‘지상파 방송광고 거래에 관한 권고안’을 내놓고 입법 전 독자적 광고영업 자제를 요청했으나, 최근 <에스비에스>의 미디어렙 설립 움직임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혼돈의 지상파 방송광고 시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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