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28 19:29
수정 : 2011.11.28 19:29
김수정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그 아이의 엄마와 내 모습이 겹친다
그저 그 녀석을 안아주며,
무서웠지? 이제 괜찮다 해주고 싶다
가슴이 쓰리고 팔딱거려서 숨쉬기도 불편하다. 차오르는 먹먹함으로 목이 아려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얼마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버리지 않을 거지, 하며 아빠 품에 안기는 그 아이의, 소년도 청년도 아닌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판다. 기말시험 공부한다고 코 박고 있는 아들내미 녀석의 얼굴과 겹친다. 8개월의 지옥을, 19년의 지옥을 어떻게든 벗어나고팠을 그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소금을 뿌린 것처럼 에인다. 그 아이의 엄마와 내 모습도 겹치기 때문이다. 그저 그 녀석을 안아주며, 무서웠지? 이제 괜찮다, 괜찮다 해주고 싶다.
아줌마는 안다. 엄마는 너를 원망하지 않으실 거다. 그저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실 거다. 아줌마는 다 안다. 참말이다. 내 잘못이다, 내 탓이다 하실 테다. 아줌마 말이 맞다. 엄마는 그러고 계실 테다. 네 탓이 아니라고, 다 내 탓이라고, 에미 탓이라고.
날선 세상에 금쪽같은 내 새끼를 내놓으려니 얼마나 겁이 났을까. 일류가 안 되면 사람 취급 못 받을까봐, 상처받고 좌절할까봐. 몇년만 고생하면 평생 잘살 거니까, 조금만 힘을 내라, 정신 차리라고,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너에게 매를 들었을 테야. 세상에 휘두를 매를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 대고 말았다. 엄마는 힘이, 용기가 없었단다. 엄마는 그랬단다. 아줌마는 다 알 수 있단다. 네가 해한 건 엄마가 아니듯 엄마도 그랬단다.
얘야! 엄마를 용서하고 너를 용서하렴. 엄마께 사죄하는 유일한 방법이란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줌마도 미안하다. 아직 철나려면 까마득한 아들 녀석이 일요일에 여덟아홉시간을 책상에 앉아 시험공부를 한다. 나 때는 저 정도 하면 반에서 1등은 했겠다. 안쓰럽고 미안하다. 기특하기도 하고. 아들은 중하위권이다. 머리가 나쁘지 않다. 평균 이상이다. 게임도 적당히 조절하며 잘 지키고 있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여기는 강남이니까 하고 자위한다. 원인을 생각해 보면 제때 받지 못한 사교육, 공부습관, 어쩌고저쩌고 따져보면 결국은 엄마 탓이다. 정보력도, 경제력도, 독한 의지력도 없는 엄마 탓이다. 세상이 그리 말한다. 뭐 했냐고. 그래서 (성적이 그만한 아이를 둔) 나 같은 엄마들은 공부가 인생의 전부냐고, 제 좋은 거 하며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하지만, 근데 마흔 넘은 나도 그걸 찾기가 힘든데 여드름 신경 쓰기 바쁜 녀석이 어찌 알까? 그래서 공부 잘해서 보장된 인생을 폼나게 살기 바라는 에미 맘이 된다. 나 대신에 너라도 그리 살길 바라며 짧은 머리로 계산해 본다. 하루에 영어단어 몇개 외우고, 듣기도 중요하니 좀 듣고, 말은 할 줄 알아야지, 에세이도 쓴다던데, 아이고 자기소개는 할 줄 아나? 수학은 적어도 1년은 선행해야 된다던데, 책도 좀 읽어 주고 봉사도 해야 대학 가기 쉽고… 계획을 세우자, 계획을!
잘 시간, 밥 먹는 시간마저 줄이고 줄여야 되네. 자기주도학습이 대세인데, 엄마가 다 하고 있네. 도대체 저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야. 뭐가 될라고. 벌써 저만치 가 있는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하교해 돌아와 소파에 늘어진 아이를 보니 답답하다. 벌떡 일어나 “내 인생을 위해서 책상에 바로 앉을게요, 엄마!” 하면 좋겠다. 일고여덟시간 학교에 있다 온 녀석에게 또 그만큼 책상 앞에 앉길 바라는 나는 사람이긴 한 거야! 에미가 맞나.
서글프다. 자식 위해서라면 목숨줄도 주저 없이 내놓을 텐데. 이 세상을, 대한민국을 바꾸기엔 내 목숨줄이 택도 없으니 만만한 자식만 닥달한다. 아이 어깨가 처질 대로 처지고 생각은 거칠어진다. 정신이 번쩍 든다. 적당히 좀 하자고, 엄친아 소리도 그만 좀 하시고. 평범하게 살기가 잘나게 사는 것보다 더 힘드요. 그리고 못난 사람이 어딨소! 다 곱고, 예쁘요. 안 그렇소. 이래 생각하니 나부터 부끄럽다. 세상의 기준에 내 새끼를 맞추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사람 수만큼의 세상이 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인 것이다. 힘들 땐 안아주리라. 넘어져 스스로 일어서길 지켜볼 테야. 이것이 엄마가 하는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아! 겁먹지 말고 당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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