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2.14 19:47
수정 : 2011.12.14 19:47
재능 기부는 우리가 잊고 있던
기부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기부는 단지 내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찬바람이 부는데 이제 정말 겨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차가움 때문인지 겨울은 유난히 따뜻함을 요구하는 계절이다. 그렇다. 겨울은 기부의 계절이다. 얼마 전 한 번화가에 있는 지하철 입구에서 재밌는 광경을 보았다. 한쪽에는 빨간 자선냄비가 보이고 반대쪽에는 빨간 조끼를 입고 잡지 <빅이슈>를 팔고 있는 노숙자가 있었다. 마침 주머니에 현금도 있던 터라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고민이 되었다. 이왕 기부하는 거, 나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잡지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잡지를 사는 것이 왜 기부하는 거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 잡지는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해 만들어진 잡지 <빅이슈>이다. 수익의 50% 이상이 판매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잡지의 특징 중 가장 눈여겨볼 만한 것은 바로 이 잡지가 사람들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잡지의 표지모델은 모두 유명 배우들인데, 이들은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모델이 된다. 표지뿐 아니라 잡지의 내용 모두 다른 이들의 기부로 이루어진다.
재능 기부는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재능 기부란 개인이나 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술, 지식 등의 무형의 가치를 나누고 공감하는 기부 방법이다. 이는 물질에 한정된 기부 방법에서 더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우던 기부는 어려운 이웃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에 국한되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로 기부의 척도는 ‘돈’이다. 사실 ‘기부’라고 하는 단어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는 매우 복잡하다. 어려서부터 기부가 바람직한 행위라고 배우지만 막상 내 돈을 내기까지는 망설임이 존재한다.
망설임에 대한 첫째 이유는 바로 내가 낸 돈이 온전하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데 쓰일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다. 지난해 일어난 ‘사랑의 열매’ 비리 사건에서처럼 기부에 대한 투명성과 건전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기부는 돈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편견에서 비롯된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하는 ‘우리가 불우이웃인데 누굴 도와!’와 같은. 마지막은 기부라는 개념이 ‘돈’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부는 계좌 잔액을 줄어들게 한다. 사람들이 당장 기부를 한 뒤 느끼는 생각일 것이다. 물론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잠깐이다. 기부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보람과 따뜻함은 나의 돈과 함께 곧 사라진다.
재능 기부는 위와 같이 물질에 한정된 기부가 생성하는 망설임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재능 기부는 기부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기부의 방식이 일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교류를 하며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이 어떻게, 어떠한 경로를 통해, 누구를 위해 쓰이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둘째, 재능 기부는 경제적 사정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재능이라고 해서 정말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어떤 분야에 대한 관심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충분한 재능이 될 수 있다. 셋째, 물질적 기부처럼 주고 나면 사라지지 않는다. 한 학생이 타인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재능 기부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수년 뒤 그 학생의 그림 실력은 그 전보다 훨씬 발전되었을 것이다. 물질과 달리 재능은 오히려 나눔으로써 더 발전하고 향상된다.
재능 기부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기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기부는 단지 나의 것을 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물질적인 기부이든 비물질적인 기부이든 기부는 하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행복을 준다. 물질적인 기부의 경우 그러한 선순환 사이클을 더디게 보여주고, 재능 기부와 같은 비물질적 기부는 그것을 빠르고 가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올겨울, 아주 작은 재능이라도 타인과 함께 나누어보는 건 어떨까. 배수윤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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