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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19 19:37 수정 : 2011.12.19 19:37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큰 이익은 안 남아도 1t 차·리어카가
성시를 이루는 우리 마당 고물상,
대기업 근무하는 것처럼 폼은 안 나도
사람 냄새 참 좋은 그곳을 접으라니요

죽지 못해 산 세월이었습니다. 때만 되면 찾아오는 보릿고개는 봄이 와도 봄이 아니었습니다. 농투성이 아버지는 농사짓다가 새끼들 굶기겠다며 홀로 용산행 완행열차를 타셨습니다. 소식 없던 아버지는 6개월 만에 쌀 한가마니 값의 돈을 부쳐 오시며 김포벌 어디쯤에 고물 리어카 하나를 마련했노라는 기별을 하셨습니다. 돈을 받아든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울다가 웃었습니다.

못난 자식 학교만은 보내야 한다며 힘겹게 마련한 단칸방 판잣집에 우리 일곱 식구 새 삶터를 마련했습니다. 신문지 더덕더덕 바람벽에 비 오면 양동이 받치는 집이어도 행복했습니다. 농사짓던 사람은 무얼 해도 산다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리어카를 부지런히 도왔습니다. 밤이면 몸뻬 바지 속 주머니에서 그날 번 돈을 환한 얼굴로 셈하셨습니다. 3년 만에 100평 마당을 마련하면서 아버지는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셨습니다.

마당을 얻고부터 리어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농사짓다 올라온 박씨 아저씨, 전쟁 통에 고아 된 김씨 아저씨, 북에서 홀로 내려온 최씨 할아버지 등 저잣거리 장삼이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고난을 생각하여 그분들께 인정스럽게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1970~80년대 한 세상을 넘어오면서 우여곡절과 파란 속에서도 마당은 자라서 800평 어엿한 고물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그렇게 편하게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다섯 형제 중 직장 잘 다니던 형과 제가 아이엠에프(IMF)의 미친 바람을 만났습니다. 1년을 놀고 있는 우리를 보고 그래도 고물상은 안 시킨다며 비철·고철 다 팔아 목돈 해주시며 다른 사업을 해보라 하셨습니다. 물정도 모른 형과 내가 함께 꾸린 의류 사업은 1년도 못 버티고 돈만 날리고 말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년 전 고철 가격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 문제로 불안해하시던 아버지는 ‘그래 기회다’ 하시며 여기저기 돈을 끌어모아 고철을 사들이기 시작하셨습니다.

미친 듯 오르던 고철 값이 아버지가 고철을 산처럼 사들이자 급전직하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뒷차를 타셨던 겁니다. 여기저기 진 빚을 갚지 못하시던 아버지는 그 여파로 중풍까지 맞으시고 고물상은 졸지에 황폐한 공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상황에서도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미 실패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오랜 고난 끝에 이룩하신 마당이 결국 자식들로 하여 무너진 셈입니다. 어머닌 그래도 우리에게 산 입에 거미줄 안 친다시며 70 넘은 노구를 이끌고 리어카를 끌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골목골목을 누볐고 그래도 오랜 경험이 있어 곧 리어카로는 다 못 할 양의 고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도 말리시던 어머니가 1t 차를 사셨습니다. 제게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생각하기 따라서는 좋은 일이라며 한번 나서보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실패한 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 대학 다 보내셨으니 이제 아버지는 하실 만큼 하셨다고요. 아버지가 한 일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하셨습니다. 허리 휘신 어머니도 하는데, 하며 나선 1t 행상이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욕심 부리지 말고 나눠 먹는다는 마음으로 하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한번도 리어카나 1t 행상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마음 안 가지셨다며 욕심 없는 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욕심 버리는 일이 쉽진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같이 살라 하셨습니다. 강한 어머니의 의지대로 우리 마당은 큰 이익은 안 남아도 1t 차, 리어카, 유모차가 성시를 이루는 곳이 되었습니다. 대기업 근무하는 것처럼 폼은 안 나도 사람 냄새가 참 좋은 곳입니다. 중풍으로 불편하신 아버지도 가끔 나오셔서 욕심 없는 미소를 짓곤 합니다. 오늘도 어머니는 할아버지·할머니들 주신다며 겉절이에 돼지 삶기에 바쁘십니다. 저들과 함께 사는 일이 어머니의 삶이 되셨습니다. 저도 이제 이것을 소중하게 지키며 살고 싶습니다. 내가 마당을 거두면 저들의 삶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손주들 키우는 할아버지, 중풍 할아버지를 돌보는 할머니, 직장 못 잡아 1t 행상하는 김군,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바로 저분들을 지키라 하십니다. 돈을 얼마 버느냐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 하십니다.

제 마당은 도로와 접해 있습니다. 주변엔 주택들도 있고요. 최근 화성시에서 입법예고한 ‘개발행위 허가운영 지침’ 개정안을 보면 앞으로 도로·주택 등으로부터 100m 안에 고물상이 들어설 수 없게 돼 저는 고물상을 접어야 합니다. 내 한 몸이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2만달러의 국내총생산(GDP)을 자랑하면서 서민의 복지를 이렇게 난도질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 저들을 지키자는 결의로 머리를 깎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꿈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한평생 할아버지·할머니께 따뜻한 국물 드리는 마음으로 살았던 어머니의 삶입니다. 제가 고물상을 버리는 것은 어머니를 버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대차지 못한 저지만 지금 머리를 깎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위하여 지금 머리를 깎습니다. 최상진 자원재활용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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