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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2014 수능 개편안’을 우려한다 / 박병기 |
김정일 사망으로 인해 어수선한 12월 하순에 현재 고1 학생들이 응시해야 하는 2014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개편시안이 조용히 발표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표의 주체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아닌, 시행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인 점과 ‘시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이다. 시안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 많은 비판과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한 최종안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교과교육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이 시안의 핵심은 국·영·수 비중을 강화한다는 것과 시험유형을 에이(A)형과 비(B)형으로 나누어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국·영·수 비중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는 탐구영역의 선택과목을 현재 3과목에서 최대 2과목으로 축소한다는 방침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고, 국·영·수 과목만을 대상으로 시험 유형을 둘로 나누어 특목고 학생과 같은 상위권 학생들에게 좀더 어려운 시험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에서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왜 이런 개편이 굳이 필요한 것일까? 아마도 교과부의 의도는 이미 학교 현장이 국·영·수 위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 수능시험도 치르게 하겠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2009 교육과정 개정’ 이후 우리 학교 현장에서는 집중이수제와 국·영·수 중심의 학원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통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상황인데, 졸속으로 진행된 ‘2011년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어 고등학교 전 학년 선택과목제가 실시되기 시작하면 우리 중등학교는 거의 대부분 어설픈 학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분석과 반성도 없이 다시 수능체제 개편을 시도하여 국·영·수 중심의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는 것은 아무리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보려고 해도 도대체 학교의 학원화 말고는 다른 목표를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학교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수업시간이 국·영·수 시험 위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국·영·수 중심의 학원에 누구나 다녀야만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지고, 정작 그 수업시간은 학원에서 배운 내용이라는 이유로 시들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어느 시점에서라도 이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우리 학교의 앞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자조적인 언사들이 교사들의 고통스러운 고백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그 고리를 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국·영·수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국·영·수는 중요한 과목임에 틀림없지만, 다른 과목에 비해 초·중·고의 전 과정을 통해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문사철(文史哲)을 교양과 교과목의 중심으로 삼았던 우리 전통에 비추어보아도 그렇고,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하는 것을 학교교육의 주된 목표로 삼는 서구 시민교육의 전통에 비추어보아도 그렇다. 오히려 최소한의 문해력과 산수능력을 갖춘 뒤에는 윤리와 역사, 정치, 경제 등을 중심에 두는 시민성 교육이 시민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근대 계몽주의 이후 주된 패러다임이다. 이번 수능 개편안이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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