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2.26 19:37
수정 : 2011.12.2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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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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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안 된 또 한해가 가는구나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온다
일제 36년의 곱절의 시간 아닌가
해마다 연말을 맞으면 70대 실향민으로서 나라의 통일을 생각하게 된다. 통일이 안 된 또 한해가 가는구나 하는 아쉬움, 안타까움, 자괴감 등이 온다. 분단 반세기를 넘어 이제 67년을 셈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긴 시간인가. 그 이전 일제 강점기 36년도 길다고 했는데, 거의 그 곱절의 시간 아닌가. 그 기나긴 시간을 남북이 서로 왕래는커녕 편지 교환도 못하고,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지내고 있지 않은가. 현재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 자기 고향을 타의로 50년 이상씩 못 가고, 어느 백성들이 내 부모, 내 형제, 내 남편, 아내, 자식을 국내 아닌 국내에 두고도 못 만난단 말인가. 이젠 지구 반대편 나라도, 심지어 ‘철의 장막’이라고 했던 러시아(옛소련)도 얼마든지 가는 세상 아닌가. 아, 어느 국민들이 큰아들은 인민군에, 작은아들은 국군에 보내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하고 반세기를 넘기고 있단 말인가. 이는 양쪽 당국자들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요, 무성의·무능의 소치라고 본다.
독일도 통일된 지 이미 21년이 되었고, 베트남이나 예멘도 벌써 되었고, 중국도 정치 분야만 빼고 거의 모든 면에서 양안관계가 자유롭고 협조적이라고 한다. 왜 우리만 어리석게도 이렇게 사는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를 계속할 것인지, 언제까지나 서로에게만 그 책임을 돌리고 있을 것인지,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하다.
왜 우리에겐 전 독일 수상 브란트나 콜 같은, 자기희생적인 정치지도자가 나오지 않는가. 눈앞의 자기나 자기 정파의 이익보다는 진정으로 먼 국가 장래나 후손들의 행복을 더 위하는 지도자가 왜 안 나오는가 말이다. 제 이익 좀 덜 챙기면 안 되나. 국민들은 자기희생적 정치가에게 감동한다. 감동하면 감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언제건 반드시 무엇으로건 되돌려 준다.
이제 정치가들을 뽑아야 할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어느 지역 국민들은 왜 거의 특정 정당 사람들만, 감동은커녕 실망만 줘도 뽑는가 말이다. 중국의 40분의 1에 불과한 이 작디작은 나라에 지역색이라니, 소가 웃을 일 아닌가. 우리 젊은이들도 웃지 않겠는가. 돌아보면, 자기 고향에도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다 있듯이, 상대 지역도 그렇지 않겠는가. 어째서 그 지역 사람들만 다 나쁘고 자기 지역인은 다 괜찮은가. 이는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가 아니라고 본다. 남북의 한국, 동서의 한국은 다 4000여년 동안 같은 언어와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이다. 6대조만 올라가면 모두 친척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남북한은 또 서로 공격이나 방어를 하기 위하여 매년 국방비를 얼마나 쓰고 있는가. 올해 남한만도 전 국가예산의 10% 가까운 30조원 정도를 쓰고, 북한은 비율로는 더 높으나 액수로는 적은 4조원 정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매년 낭비되는 이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몇 년만 경제에 쏟아부으면 얼마나 많은 발전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북한이 가졌다고 하는 약 7000조원에 달하는 마그네슘, 우라늄 등 지하자원과 양질의 노동력을, 남한의 국제 수준 기술력과 자본 등을 합치면, 그야말로 세계가 놀랄 시너지 효과를 거두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일본 경제도 쉽게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또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세계 선진국들과 같은 대열에 서려면 인구가 최소한 7000만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일본만도 남한 인구의 거의 세 배요, 영토도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주요 7개국(G7) 국가로의 진입도 이럴 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의 전무후무한 3대 세습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또 200만~300만이 굶어 죽었다고 하는데도 별 변화가 없어 보이는 저들의 비정상적인 체제를 보면서,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강한 인내심을 가져야 함을 절감한다. 그리고 국력(총생산) 차가 20 대 1이라고 하니, 서독이 동독에 많이 원조를 베푼 것처럼, 일단 우리도 많이 베풀고 또 유화책을 써나간다면, 나중에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청사에 길이 빛날 이 일이 어찌 쉽겠는가.
윤용식 한국방송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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