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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09 19:37 수정 : 2012.01.09 19:37

‘살인범’ 입시제도는 수사조차
받지 않았는데, 학생인권조례는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의 사망 요인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게 뭘까요? 사고? 질병?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사실 필요 없다고 봅니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자살입니다.

뭐 그렇다고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전국의 중·고등학생 39만여명 중 겨우 596.7명, 약 0.015%밖에 되지 않는 ‘사소한’ 일이니까요.(2010 통계청 조사) 그래서 최근까지는 언론에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조그만 기사로 간략하게 나오곤 했었지요.

어, 그런데 얼마 전에 한 공중파 방송 뉴스에 자살한 학생의 유서가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또한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드디어 이 사회가 0.015%까지도 생각해주는 아름다운 사회가 된 것인가 하고요.

그런데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죽은 학생이 (많은 학생과 비슷하게) 성적이 아닌 학생 사이의 폭력으로 자살한 것이죠.(그렇다고 이 일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물론 단지 그뿐이라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미친 입시, 잘못된 학교체제로 ‘살해당한’ 학생에게 단 20초, 혹은 15×15㎝의 공간도 주지 않던 사람들이, 이 불쌍한 학생에게는 무려 몇편에 걸친 기사와 헤드라인, 2~3면을 통째로 주는 것 아닙니까.(참고로 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의 53.4%는 성적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분들이 그 학생의 죽음을 진실로 슬퍼해서 추도사를 그렇게 길게 쓴 것이었다면, 역시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감히 망자에 대한 애도를 매도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하느냐고요? 그렇다면 직접 그런 기사들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느끼는 점을 이야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죽은 학생에 대한 애도와 슬픔이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학생’이라는 개념에 대한 분노와 공포, 또 불안감이 느껴지십니까?

결국 이러한 ‘분노의 추도사’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가해 학생을 학생이라는 개념으로 일원화시키죠. 그렇기 때문에 분노와 공포, 불안감이 모든 학생에게 적용됩니다. “저들은 사납고 무서우며 야만적인 존재이다. 저들을 내버려 두면 큰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분노는 그러한 존재를 ‘내버려두기 시작한’ 학생인권조례에 돌아갑니다.(서울학생인권조례 수정안이 통과된 직후에 이러한 분노의 추도사가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아니, 보호하고 감시해야 하는 존재를 내버려두라는 거야?” 결국, 사람들은 ‘인권’이라는 마땅하고 정당한 권리마저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조례를 저지하려는 일부 기관·시민단체에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요! 아직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살인범’ 입시제도, 이를 방관하는 병든 교육체제는 수사조차 받지 않았는데, 존중받아 마땅하나 지켜지지 않아 특별히 제정된 인권조례는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배심원들이 사형판결까지 내리려고 추진중입니다.


당장 이 ‘가미카제’ 같은 짓을 그만두십시오. 누군가의 죽음을, 제발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주길 바랍니다. 또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재판의 진범을 서둘러 찾아내시길 바랍니다.(누군지는 이미 제시한 것 같은데….) 그 뒤에야 분노의 추도사는 끝나게 될 것입니다. 조준섭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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