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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09 19:39 수정 : 2012.01.09 19:39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아이들은 범죄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구조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지난해 1년간 영화진흥위원회 남양주 촬영소에서 지원하는 ‘영화로 찾아가는 심리치유’라는 프로그램을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한 소년원에서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매주 한번씩 그곳을 방문하여 아이들과 같이 영화 보기, 영화 만들기, 상담하기 등으로 이뤄졌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어깨가 벌어지고 나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큰 아이들이 줄지어 지나갈 때는 위축됐던 것도 사실이고, 처음 교실에서 마주 본 아이들의 냉담한 무표정에서 느껴지는 단절감은 절벽 같은 것이었다.

사실 그곳의 아이들은 평범한 아이들과는 좀 달랐다. 그건 꼭 짧게 자른 머리와 똑같이 차려입은 검은색의 트레이닝복 때문만은 아니다. 또래의 아이들처럼 천진하고 낙천적이고 분방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겐 엄격한 통제를 짐작하게 하는 긴장된 눈빛들이 있었다. 또 그들 사이엔 엄격한 서열이 있어 본능적으로 권력에 가까이 선 활달한 아이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무기력하게 방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몇명에게선 충동적인 폭력성이 꿈틀대는 것을 언제나 느낄 수 있었고 무심코 뱉는 말투에서는 섬뜩한 적개심이 묻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갇힌 자의 우울함이 있었다. 16~17살 전후의 갇혀 있는 아이들이 보이는 우울한 무기력함.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아이들은 점차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통해 커다란 모니터에 비춰지는 자기들의 모습을 보고는 수줍어하며 키득거리던 아이들이 카메라를 손에 쥐자 금세 또래의 장난기를 발휘하며 자기들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점차 진지하게 변해갔다. 학기 수업이 끝날 때쯤 아이들이 카메라를 통해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고 형은 소년교도소에 있고… 이런 식이었다. 아이들은 순서대로 자기가 저지른 일을 고백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설명했다. 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집을 나와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 등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아이들은 감춰진 많은 이야기들을 기꺼이 카메라 앞에 털어놓았으며 편집된 내용들을 모두 함께 관람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꿈도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난 그렇게 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또한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무심코 저지른 범죄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그들의 미래일 뿐이며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을 땐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치유는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고 그것과 대면하면서부터 시작하는데, 다행히도 아이들은 재미없다고 이게 무슨 영화냐고 야유하면서도 그 화면들을 곁눈질로 다 보고 있었다.

그들이 털어놓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이들은 범죄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구조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 아이들 대부분이 결손가정에 속했고 거리를 떠도는 또래의 아이들만이 유일한 교감 상대였으며 범죄는 너무 손쉬운 거리에 있었다. 학교 역시 그들을 방치하고 있었고 그들은 출소한다고 해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에 놓여 있었다. 돌아갈 곳이 그들에겐 없어 보였다.

조용하기만 한 광수(이하 가명)는 특별활동 시간에 도자기 굽는 법을 배웠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출소하면 경기도 이천에 있는 도예전문고등학교로 진학할 거라고 했다. 절도죄로 2년을 선고받았고 할아버지하고 단둘이 살다가 9년 만에 최근에야 엄마를 다시 만났다고 했다. 광수는 비로소 그곳에서 자기의 꿈을 찾았는데 이는 드문 경우였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나이 많은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17살 승표는 주택조립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두달치 월급을 주지 않자 사장의 차를 빼돌렸다고 했다. 제 딴에는 그것을 담보로 월급을 요구하려던 것이었는데 사장은 아이를 고소했고 아이는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아이는 그동안 모아둔 300만원 정도의 목돈을 맡길 사람이 없어 친하게 지냈던 공장의 한 형님에게 맡기고 들어왔다고 했다. 승표는 그 사람을 철썩같이 믿는 눈치였는데 그는 1년 이상 면회도 오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 아이는 곧 출소하는데 내 상상은 불길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이해를 못 해 “왜 주인공 아이가 권투를 하다가 발레를 하지요?”라고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묻던 순박하기만 한 승표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그는 건설회사 사장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가장 끌렸던 아이는 봉식이였다. 17살답지 않게 체격이 좋았으며 그곳에서 ‘짱’으로 통하는 아이였다. 점잖았으며 가정형편도 나쁘지 않고 공부도 꽤 하던 아주 괜찮은 아이였다. 그 아이의 꿈은 경찰공무원이 되거나 폭력조직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여러 건의 폭력으로 들어왔고 이미 그쪽의 ‘형님’들과 많이 안다고 했다. 억양이 선명한 부산 아이였다. 아차, 싶었다. 역시나 그 아이는 영화 <친구>를 수십번 봤다고 했다. 그 아이가 특히 마음이 아팠던 것은 내가 영화감독이어서가 아니고, 또 영화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오랜 논란 때문도 아니었다. 그건 아이의 몸에 새겨진 커다란 문신 때문이었다. 문신을 지우는 처치를 받고 있다고 했지만 살을 도려내지 않는 한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깊고 잘 새긴 문신이었다.

그 아이는 과연 경찰공무원이 될 수 있을까? 아이는 두 갈래 길에서 흔들리는 눈치였는데 맘 잡고 열심히 공부해서 경찰 되는 것이 조폭 하는 것보단 낫지 않으냐고 말은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아이들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아이들이 30명이었다. 이 아이들이 곧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나온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그곳으로 들어가지만 그 수만큼 다시 사회로 나온다.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적어도 승표와 봉식이는 더 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데 정작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 아이들을 품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아이들이 다시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더 이상 이 아이들을 외길로 몰지 않는 그런 사회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아이들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겨울,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임종재 영화감독·<그들만의 세상>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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