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18 19:39
수정 : 2012.01.18 19:39
독일·프랑스·일본 등에서는
개발사업으로 임대차가 중단되면
퇴거료를 보상하고 있다
3년 전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는 상가 임차인들과 이를 지원하는 철거민들이 강행개발, 강제철거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화기를 준비한 시위자가 있는 경우 소규모 진압으로 화기의 소진을 유도한 뒤 진압하라는 행정지침이 있었고, 화기를 소진하는 동안 협상을 통하여 자진 해산하도록 하는 노련한 협상경험도 많았던 경찰은 어쩐지 이날은 그러한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경찰 수뇌부는 시위진압이 아니라 테러진압을 전담하는 경찰을 투입하였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정부정책에 반기를 드는 세력에게는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정치적 조급함(?)이 사태를 키운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낳고, 아직도 진상규명의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소통을 행정의 기본원리로 강조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지만, 그 당시 정부의 행정은 소통을 떼쓰는 민원인들에 대한 굴복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밤새워 얘기를 듣는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통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에 대한 최소한 행정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것이 용산참사가 보여주는 반면교사이다.
경찰관 한분을 포함하여 여섯분의 희생, 그리고 아직도 여덟명의 구속자들…. ‘문명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구나!’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다 큰 충격을 받은 우리에게 인권과 양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폭력적인 개발방식과 개발행정의 무책임을 질타하는 여론을 일깨운 초석이 되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용산참사가 제기한 재개발·뉴타운, 상가 보상, 강제철거 금지 등의 제도개혁 과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와 같은 독일·프랑스 등 대륙법 국가들은 개발사업으로 임대차가 중단되면 퇴거료를 보상하도록 법제화하고 있고, 일본도 법원의 판례로 퇴거료 보상을 하고 있어 상가 보상을 둘러싼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다. 퇴거료는 동종 동 규모의 영업을 인근에서 다시 시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무형의 영업이익까지 포함한 권리금 전부를 보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의 개발방식과 같이 상인의 영업활동은 전혀 관심 밖에 두고 권리금 전부를 잃게 하여 상가 임차인을 사실상 파산시키는 관행은 막을 수 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권리금 전부 보상이냐 보상 불가냐의 ‘모 아니면 도’의 논쟁을 반복하고 있는 정부의 행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용산참사 꼭 1년 전,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 지구로 지정만 되면 영세민이 중산층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뉴타운 공약을 남발했던 국회의원들은 2억~3억원에 달하는 과도한 입주비용 부담으로 격렬하게 저항하는 대다수의 주민들에게 사과도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3년을 보냈다. 다행히 2011년 말 국회에서 과반수의 동의로 뉴타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전략을 겨우 마련했으나, 이미 외지인의 투자로 주민들이 많이 바뀐 지역에서는 주민합의가 어려워 난항을 겪고 있다.
망각이 곧 양심과 인권의 패배이다. 불과 3년 전 그 강제철거의 끔찍한 참상을 목도했지만, 북아현동, 명동, 상도동, 내곡동 곳곳에서 강제철거는 현재 진행형이다. 강제철거의 폭력성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높아져 두리반 사례와 같이 강제철거를 강행하지 않고 주민들과의 합의를 통해 철거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늘어났지만, 우리의 망각에 기대어 오로지 돈이 덜 든다는 이유로 폭력적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해보겠다는 욕망은 언제든지 분출해 우리의 인권과 양심을 아프게 하고 있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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