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2.09 19:54 수정 : 2012.02.09 19:54

싫어요 하나. ‘비키니 사건’이 <나꼼수> 그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 혹은 그 빌미가 되는 것은 싫어요.

‘비키니 사건’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비키니 인증샷을 바라보는 <나는 꼼수다> 진행자의 관점이 남성 편향적인가 여부에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터지자 보수 언론과 그 지지 누리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꼼수>는 원래 그 정도 수준’, ‘그들의 천박한 본질이 드러났다’는 식의 비난을 봇물 터뜨리듯 쏟아내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꼼수>의 핵심적 내용은 ‘비키니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령 백번 양보해 ‘비키니 사건’이 <나꼼수> 내용의 본질이라 하더라도 보수 쪽의 화려한 여성 비하 혹은 추행·추문 전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가 아닌가 싶다.

싫어요 둘. 날선 논쟁으로 인한 감정적 소모전은 싫어요.

‘비키니 사건’이 터지고 ‘삼국카페’의 성명이 발표되자 ‘진보는 또 분열하는 것인가’라는 자괴감 섞인 의견들이 나타났다. ‘비키니 사건’으로 인한 분열 양상은 어찌 보면 정치권에서 수없이 반복되어온 강성 진보와 느슨한 진보의 분열 및 괴리를 그대로 닮아 있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진보 쪽에서는 ‘대단한 일도 아닌데 덮고 가자’는 태도인 반면 강경 쪽은 ‘심각한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이것이 정말 문제’라고 맞받아친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알바’라느니 ‘<나꼼수>=기독교’라는 식의 감정적 소모전이 생겨났다. 이건 정말 결과 산출 없는 단순 소모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요. 반대 의견들의 ‘공존’은 보기 좋아요.

사실 그간의 인터넷상 논쟁들은 논쟁이라기보다 격렬한 욕설을 통한 상대 제압(속칭 ‘키보드 워리어질’)에 불과한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논쟁의 결과는 십중팔구 감정적 상처와 그로 인한 상대와의 절교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번 ‘비키니 사건’에서도 그런 행태는 어김없이 일부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전체적 양상은 다르다. ‘삼국카페’의 성명에서도 보이듯이 그들 역시 <나꼼수>의 그동안 역할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보수 언론의 준동을 경고하고 있다. 진보가 같은 진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생각일 수는 없다. 그 안에서도 다른 생각이 생겨날 수 있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선에서의 이런 논쟁은 당사자들이 모두 ‘반일률적’이며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논쟁이 있었으나 이것이 상대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있다. ‘나-남’, ‘같음-다름’ 사이의 공존이 존재함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는-아이러니하게도-다름 아닌 ‘가카’에게 있다. <나꼼수>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반가카’라는 가장 시급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 역시 ‘전부 가카 덕분’임을 상기한다면, 과연 그분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김병철 대전시 동구 홍도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전체

정치

사회

경제

지난주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