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회계는 폐지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행 기성회계만큼
혹은 그 이상의 국고지원이 필요하다
국공립대의 기성회비 징수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법원 판결 때문에 어수선하다. 나는 이번 판결이 국립대가 처한 현실과 왜곡된 재정구조 문제를 도외시한 안이한 판결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기형적인 국립대 재정구조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의미 있다. 기성회계의 연원과 현황, 대안을 살펴보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첫째, 기성회계의 연원. 짐작건대 일반 시민들은 ‘국립’대학이므로 예산 전부를 국가에서 지원한다고 생각하리라. 착각이다. 국고지원은 최소 인건비, 시설비, 운영비 등에 한정된다. 소요예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나머지는 기성회비와 기부금 등으로 메워야 한다. 한국 국립대는 재정구조에서는 ‘반쪽 국립대’이다. 심지어 사립대에 비해서도 국고 지원이 적다. 재작년 연세대는 연구개발비 포함 2349억원의 국고를 지원받았다. 거점 국립대 중 최다인 경북대(2126억원)보다도 많다. 유수 사립대는커녕 수도권 소규모 사립대보다 국고지원이 적은 국립대들도 허다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 교육지표’ 조사 결과는 ‘반쪽 국립대’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립대의 평균 등록금은 5315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이다. 반면 정부의 고등교육 공교육비 부담률은 꼴찌에서 둘째였다. 고등 공교육비는 국내총생산(GDP)의 0.6%로, 이 기구 평균(1.0%)의 60% 수준이다. 민간 부담률은 국내총생산의 1.9%로, 이 기구 평균(0.5%)의 4배이다. 한마디로 국가가 국립대에 대한 재정지원을 방기해놓고 학부모들에게 재정부담을 전가해온 것이 기성회계 문제의 핵심이다.
둘째, 기성회계의 현황. 일부 언론은 기성회비가 교직원의 인건비로 마구 유용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기성회계에서 기성회 직원(계약직 포함)의 인건비 비중은 약 15% 내외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대학 운영인력을 기성회계로 고용한 것이다. 교수의 급여보조비도 마찬가지이다. 국립대 교수 급여는 국고급여와 기성회계급여로 구성된다. 이걸 합쳐도 중견 사립대의 3분의 2밖에 안 된다. 이래도 국립대 교수들이 학생 등쳐먹는 파렴치범인가. 물론 기성회계에서 불요불급한 지출은 없애야 한다.
하지만 필요 인건비를 제외한 나머지 70~80%의 기성회비는 고스란히 운영비로 들어간다. 따라서 현재의 재정구조에서 기성회계를 대책 없이 없앤다면 국립대는 파산한다. ‘지원은 최대한, 간섭은 최소한’이라는 선진국 대학의 운영원칙이 한국 국립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지원은 최소한, 간섭은 최대한’의 관료주의가 득세한다.
셋째, 문제의 해법. 기성회계는 폐지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행 국립대 기성회계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국고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국립대학 재정교부금법’이나 ‘지원특별법’을 만들어서 국립대에 대한 전폭적인 국고지원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예산이 없다고? 거짓말이다. 예산은 있다. 8000억원이면 국립대 등록금을 절반으로 내릴 수 있다. 4대강에 쏟아부은 예산이 20조원을 넘는다. 잘못된 감세정책을 고치면 재정 확보는 충분히 가능하다.
교과부는 국고회계와 기성회계를 교비회계로 통합하는 ‘국립대재정회계법’을 해결책이라고 내세우지만 임시방편이다. 근본 해결책은 국립대 재정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기성회계를 없애고 국립대 반값 등록금, 무상 등록금을 실현하려는 정책적 의지이다. 정책당국의 결단을 촉구한다.
오길영 충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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