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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20:52 수정 : 2005.07.21 20:54

27면 발언대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대륙철도사업팀장

발언대

북한에 대한 중대제안이 공개된 이후, 구구한 억측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여론이나 언론도 신중론 내지 부정적인 내용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전력 현황이나 대북 전력지원이 북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은 매년 1월초 <노동신문>을 비롯한 3개 신문에 신년 공동사설을 게재한다. 이 사설은 1년간의 정부정책 방향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는 구실을 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단골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인민경제의 주공전선, 즉 중점분야인 전력, 석탄, 금속, 철도부문의 활성화이다. 4대 부문 해결을 몇 년째 최우선 정책으로 강조를 하고 있지만, 좀처럼 나아지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 해결의 열쇠가 바로 전력 부문이다. 전력부족이 북한 경제부문에 끼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우선 전력이 부족하면 석탄을 비롯한 광물 생산이 급감하게 된다. 북측의 주요 광산들은 일제 때부터 개발되어 갱도가 매우 깊다. 따라서 광부들의 이동이나 채탄수송은 전기열차를 이용해야 하며 채탄작업도 전기를 이용해야 한다. 화석연료를 사용한 이동이나 채굴은 갱도 내에서 공기부족으로 질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력 부족으로 인해 광부들은 걸어서 들어갈 만한 깊지 않은 탄광에서 채탄작업을 한 뒤, 인력으로 석탄 수송차를 밀고 나와야 한다. 채탄량은 급감하게 되고, 이는 즉시 석탄중심 산업구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한편, 운송부문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까? 북한철도는 전 노선의 80% 이상이 전철화되어 있다. 김일성 주석은 1958년에 ‘전력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에서 수송능력을 높이고 수송원가를 낮추기 위해 철도를 전철화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철화를 추진할 정도로 전력이 남아돌았다는 얘기다. 남측의 전철화율이 20% 수준인 점을 볼 때, 북한의 전철화 수준은 놀랄 만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북한은 화물수송의 90%, 여객수송의 60%를 철도가 담당하고 철도 편중의 운송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 부족은 화물 적체에 따른 극심한 수송난과 운행속도 저하를 의미한다. 즉, 철도운송의 정시성, 경제성,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매년 북한에서는 크고 작은 철도사고가 빈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주요 원인이 갑작스런 전력공급 중단이라고 한다. 지난해 발생한 용천역 열차사고도 전철선의 접촉으로 인한 폭발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황영조 선수가 역주하는 평균속도인 시속 20km 정도로 열차가 주행한다는 북한 철도의 느린 속도도 전력부족에 기인함이 분명하다.

북한의 지방도시를 몇 군데 방문한 적이 있다.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고, 전기로 움직이는 시내 교통수단인 트롤리버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첫 인상이었다. 함흥에서는 북측이 자랑하는 흥남비료공장과 2.8 비날론공장이 가동을 중지했는데 전력부족이 원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또한 항만에서 선박의 화물을 하역하는 크레인을 이동시켜야 하는데, 전력이 부족하여 굴삭기나 불도저로 크레인을 미는 풍경은 북측에서만 볼 수 있는 서글픈 진풍경이다.

1948년에 북한이 남측으로의 전력공급을 일방적으로 끊은 이후 57년만에 거꾸로 우리가 북한에게 전력 공급을 제안한 것은 상전벽해와 같은 엄청난 변화이다. 수풍댐을 먼 발치에서 본 적이 있다. 압록강이 국제하천이기 때문에 수풍댐에서 생산된 전력까지도 중국과 절반씩 나눈다고 한다. 정말 맥 풀리는 이야기이다.


북한에 대한 전력 지원은 산업의 쌀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 굶고 있는 북한주민에게 먹는 쌀을 제공하는 것처럼, 빈사상태에 놓인 북한 산업과 운송부문에 산업의 쌀, 전력을 지원한다는 것은 한 단계 도약된 남북경협의 모델을 제시하는 내일의 청사진인 것이다.

안병민/한국교통연구원 대륙철도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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