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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3 19:35 수정 : 2012.02.23 19:35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신약 보험 협상이 결렬된다면
뻔히 치료제를 눈앞에 두고도
국가한테 버려지는 꼴이 됩니다

얼마 전 멍하니 채널을 돌리다,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사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왈칵 울음이 쏟아졌습니다. 지금까지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PNH)이란 희귀질환을 앓으며 힘들게 지내왔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제가 앓고 있는 질환은 겉으로 보기엔 잘 티가 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늘 마스크를 쓰고 있는 저를 두고, 가벼운 감기 정도에 걸린 줄 압니다. 이 질환의 특징이 그렇다고 합니다. 정상으로 보이지만 각종 합병증으로 내부 기관들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걸어다니는 폭탄’ 같은 상태죠.

지난 몇년간 가벼운 감기로 심한 고열과 혼절로 몇번을 응급실에 기어가야 했는지 모릅니다. 끊임없이 깨어지는 적혈구로 빈혈증상과 혈전증의 위험에 항상 시달리고 임시방편으로 수시로 수혈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 복통이 있을 때면 마약성 진통제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심한 고통을 느낍니다.

희귀질환은 그 질환만큼이나 치료제가 귀합니다. 제약회사들은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 속이 상하는 것은 질병에 대한 치료제가 어렵사리 개발되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혜택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도 치료제가 개발된 지 수년이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치료제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다시 들립니다.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국회에까지 가서 질병이 얼마나 심각하고 치료제가 꼭 필요한지를 알리고 환자들 스스로 발 벗고 나서 방송과 신문을 통해 목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저와 동료 환우들도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며칠 전 정책 관계자를 찾아갔지만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절실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를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환자들이 길거리에 나서서 목에 핏대를 세워야지만 우리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닌가 속이 상하고 울분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2월28일은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라고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수의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 환자들이 치료제를 통해 삶의 희망을 다시 찾았다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정치인들과 정부가 날마다 더 많은 복지 혜택과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떠들어댑니다. 저는 이 사회에서, 건강보험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정책 관계자들이 희귀질환인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셨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다른 외국의 환자들처럼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마치 인질이 된 것 같습니다. 제약사가 악당들도 아니고, 그들도 정당한 가격에 정부와 협상을 진행했을 것이고, 신약만 통과가 되면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으로 하루하루를 힘들어하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도 정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에 뉴스에서 속보로 다루었던, 국민이 해적에 납치됐던 상황이나 중동지역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되었을 때 정부에서는 발 벗고 나서서 직접 해적들도 소탕하고 또 인질들과 협상하여 무사히 우리나라로 그들을 귀국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희귀질환 환자들은 정부마저도 외면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만약에 이러한 신약 보험 협상이 결렬된다면 뻔히 치료제를 눈앞에 두고도 저희는 국가한테 버려지는 꼴이 됩니다. 그러한 일례로, 정부에서 미적거리는 사이 작년에 환우 한 분이 혈전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언제 어디서 합병증으로 잘못될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그저 사람답게,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부디 많은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널리 알려주시면 정말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장호진 전남 담양군 수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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