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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13 11:48 수정 : 2012.03.13 11:48

생활기록부에 원하는 직업을 선뜻
적지 못한다. 꿈을 쓰고 화이트로
지우고 다시 쓰고 화이트를 든다

어느 수족관에서 두 마리의 상어가 놀고 있었다. 한 마리는 엄청난 크기로 위용을 자랑했다. 그런데 다른 한 마리는 마치 그 상어의 새끼처럼 왜소했다. 놀라운 것은 이 두 마리의 상어가 한날한시에 같은 어미한테서 태어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둘의 크기는 그토록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유는 그들이 살아왔던 수족관의 크기였다. 한 마리는 넓은 수족관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자란 반면, 다른 한 마리는 제한된 좁은 곳에서 키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수족관에서 자라고 있을까.

고등학교 1학년 때 계열 선택에 도움을 받고자 응했던 적성검사에서 나는 문·이과 적성이 똑같이 50%라는 결과를 받았다. 나는 내가 어느 쪽이든지 길이 열려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막상 문·이과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서는 반반의 성향을 가진 것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과학탐구대회에서 ‘선크림을 바른 식물은 광합성을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수상을 한 것을 계기로 평소 과학탐구에 흥미를 느껴온 나는 2학년이 되어서도 과학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때문에 이과에 가려고 했는데 수학성적이 우수한 편이 아니고 주변에서도 “너 수학 잘하는 편 아닌데 이과 가서 어떻게 버티려고?”라는 우려 섞인 이야기를 하니 이과 선택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학과목 성적에 따른 감별작업은 나를 문과 수족관으로 들어가게 했다. 반으로 나뉜 수족관에서 다른 한쪽 수족관을 바라보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꿈은 영원한 꿈으로만 남겨졌다. 이제 나는 나의 꿈을 반쪽짜리 수족관에서 꾸어야 한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버리고, 자신의 성향을 이과·문과라는 두 가지 틀에 짜맞춰 가야 하는 어려움을 마주한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아직 못 찾은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학교에서는 고등학교 1~3학년 때의 진로가 일정한 학생을 원한다. 미래의 나를 그려보고 오늘을 계획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대학이 원하는 생활기록부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1학년 때의 꿈과 현재의 꿈이 다른 학생이라면 1학년 생활기록부에 적힌, 수정 불가능한 자신의 꿈이 마냥 원망스럽다. 학생들은 1학년 때의 실수를 번복하지 않기 위해 생활기록부에 내가 원하는 직업을 선뜻 적지 못한다. 꿈을 쓰고 화이트로 지우고 다시 꿈을 쓰고 화이트를 든다. 고민 끝에 이것이 진정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도 않은 채로 꿈을 적는다. 그러고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그 꿈에 맞추어 열심히 살기를 결심한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꿈을 크게 꾸라고. 꿈을 크게 꾸면 그만큼 큰 사람이 된다고. 그런데 학년을 거듭할수록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는 수족관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학생들이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는 큰 수족관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신주배 서울 송곡여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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