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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19 19:34 수정 : 2012.03.19 19:34

<한국방송>(KBS)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가 취소되자 단원들이 대체 연주회를 열기 위해 박은성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와 함께 리허설 연주를 하고 있다. 케이비에스 교향악단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2010년 7월 함신익씨의 상임지휘자 선정과 단원들의 반발에서 비롯된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 내부의 갈등이 올해 1월 단원들의 집단 오디션 거부에 이어 지난 8~9일 정기연주회마저 연습 파행으로 취소되는 불상사를 낳았다. 케이비에스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가 취소된 것은 1981년 국립교향악단에서 한국방송(KBS) 소속으로 이관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케이비에스 교향악단의 한 단원과 악단 운영·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방송 시청자사업부의 서로 다른 견해와 주장을 소개한다.

지휘자 역량·사쪽의 경제논리 탓

KBS 교향악단의 한 단원

지난 8~9일 열릴 예정이던 제666회 <한국방송>(KBS) 교향악단 정기연주회가 취소되었다. 악단에 몸담은 음악인으로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뭉크의 그림 <절규>가 생각나고 가슴 가득 쏟아낼 수도 없는 눈물이 차오른다. 연주회 전날인 7일 밤 “연주를 취소한다”며 함신익 상임지휘자가 연습실을 떠나던 순간이 아직도 현실 같지 않다. 단원들은 파행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객원 단원을 구하고 병가 중인 단원도 나와 대기했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날 저녁 8시30분, 사쪽 시청자사업부장은 연습을 위해 모인 단원들에게 앞서 휴식시간 벌어진 두 단원의 다툼을 언급했다. “한 단원이 연주를 안 하고 돌아가겠다는데 이 일로 연주가 파행에 이르면 책임지겠느냐”고 강압적으로 말했다. 단원들은 “두 사람 간 개인적인 다툼이 어떻게 연주를 파행으로 몰고 갈 수 있느냐”고 의아해했다. 그날 오전 바이올린 파트의 한 단원은 연습 파행과 사쪽의 고압적 자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119에 실려 갔다. 함 지휘자는 이 단원을 “연주에 지장이 없으므로 제외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다툼의 당사자였던 여성 단원은 연주를 파행으로 이끌 수 없어 다퉜던 남성 단원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 후배 남성 단원은 연습을 거부하고 귀가했다. 잠시 뒤 함 지휘자가 “10분 휴식한다”고 연습실을 나가자 평소 그와 가까이 지내던 단원 3명도 귀가했다. 뒤이어 다시 들어온 함 지휘자는 “이 상태로는 연습을 못 하겠다. 연주를 취소한다”고 말하고 떠났다. 단원들은 돌아와줄 것을 요청하며 자정 넘어서까지 연습실을 지켰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시청자사업부는 연주회 당일 오전 10시40분께 단원들에게 “연주회가 취소됐다”고 ‘휴대전화 문자’로 알려왔다.

케이비에스 교향악단의 57년 역사상 처음 발생한 정기연주회 취소는 어쩌면 연습 첫날부터 예견됐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5일 첫 연습부터 시청자사업부는 연습 장면을 캠코더와 스마트폰으로 찍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했다. 함씨가 상임지휘자 취임 뒤 본인이 없을 때의 연습 상황을 보고 싶다며 연습실에 폐쇄회로텔레비전 설치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 일로 단원들은 연습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곤 했다. 단원들이 항의하면, 사업부 쪽은 “이러면 연습 거부다. 연주를 거부하는 거냐?”고 자극적인 말을 해왔다. 연습 때마다 캠코더를 앞세운 사업부 팀장과 순조로운 연습을 위해 나가달라는 단원들 사이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함 지휘자는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단원들은 좋은 연주를 천명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음악적 역량이 부족한 지휘자가 연주의 질을 떨어뜨리고, 20% 넘는 단원들을 징계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악단을 개편하려고 오디션을 강요한다. 단원들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한국방송 또한 국민 수신료로 운영하는 악단을 경제논리로만 접근하면서 악단을 존폐 위기로 내몰고 있다. 지금 난국을 타개하려면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단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상임지휘자가 선정되어야 한다. 단원들 또한 차기 상임지휘자 부임 뒤 1년간 급여를 동결하고 그 인상분을 기획 연주와 지방 연주를 위한 예산으로 전용할 것과 연주력 향상을 위해 외부 출강과 외부 연주회 출연을 금지할 것을 제시한다. 사쪽과 악단 업무를 상시 협의하기 위한 ‘단원협의회’ 등을 구성해 공식 대화창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악단이 하루빨리 정상화되어 지금까지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의 교향악단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개혁 거부·그릇된 조직문화가 문제

이재숙 <한국방송> 시청자사업부장

요즘 <한국방송>(KBS) 교향악단은 국민에게 사랑받기보다는 잇단 파행 속에 비난을 받고 있다. 단원들이 지난 1월20일 노사가 합의한 ‘오디션 평가’를 거부하고, 장외로 나가 음악감독인 함신익 상임지휘자의 퇴진과 오디션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10월 정기연주회 연습 거부 사태 이후 연습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급기야 정기연주회가 전격 취소되는 파국을 맞았다. 이유야 어떻든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서 송구스러울 뿐이다.

정기연주회 첫 연습일인 5일 아침, 함 상임지휘자가 연습실에 들어섰고, 소란 속에서 한 단원이 그에게 폭언을 했다. 파국의 전조였고 이후 사흘 내내 파행이 이어졌다. 결국 연습 마지막 날인 7일, 오디션을 집단 거부한 다수 강경 단원들이 오디션에 참여한 소수 단원에게 폭언과 위해를 가하면서 누적된 갈등이 폭발했다. 외부인은 믿기 어려운 이곳 풍경이다.

한 남성 단원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디션을 반대했던 여성 단원이 기습적으로 종이컵에 담긴 물을 그의 얼굴에 끼얹었다. “야, 그렇게 사는 게 좋아?” 잠시 뒤 물을 닦던 그에게 주변 사람들도 가세해 막말을 했다. “다음에는 양동이를 준비해야겠네. 너무 약했던 것 같아요.” 믿어지지 않지만 그날의 실제 상황이다.

연주를 포기하고 나가겠다는 그 단원을 겨우 설득해 운영부가 중재에 나섰다. 가해 단원은 목격자가 있는데도 가해 사실을 부인하고 사과를 거부했다. 오디션에 참여했던 수석 포함 단원 4명은 이런 분위기를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연습실을 떠났다. 또한 다수 단원들은 상임지휘자가 섭외한 객원 연주자들에게 압력을 가했고 연습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객원 연주자가 8명에 이르렀다. 급기야 객원으로 온 어린 여성 베이스트롬본 연주자는 병원 응급실에 이송되기도 했다. 흥분 상태에서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인 케이비에스 단원들도 첫날 3명, 둘쨋날 2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

같은 날 교향악단 사무실에서는 소수 단원 1명이 10여명의 단원들에게 둘러싸여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언어폭력을 당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그날 밤 호흡곤란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이날 극심한 위협을 느꼈다는 이 단원은 자구책으로 당시 상황을 녹음했다. 이 녹음 파일은 케이비에스 사내 게시판에 공개돼 직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정기연주회를 강행하는 것은 무모하고도 무책임한 일이었다. 7일 밤 9시 함 음악감독은 전체 단원들 앞에서 연주회 취소를 선언하고 회사를 떠났다. 단원들은 이번 사태가 ‘개인 간의 우발적 충돌’이라고 한다. 하지만 심각한 언어폭력과 따돌림이 일상적으로 이뤄져왔다는 게 소수 단원들의 일관된 진술이다. 외부에 드러내긴 추악한 진실이다. 누워서 침 뱉기지만 치부를 드러내야 치료도 가능하다는 생각에 이 사실을 쓴다.

케이비에스 교향악단의 과거 명성이 쇠락하고 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떠난 이후, 2005년부터 연주 기량 평가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내 최고 연봉에 정년 61살까지 평가 없이 간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래서 회사는 단원 대표도 포함된 노조와 오디션 평가 실시를 합의했다. 국내 다른 악단들이 이미 시행중인 시스템이다. 케이비에스 국악관현악단은 약속대로 오디션을 마쳤고 교향악단은 77명 중 69명이 집단 거부했다. 단원들의 개혁 거부와 폐쇄적 조직문화가 결국 연주회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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