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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21 19:35 수정 : 2012.03.21 19:35

화 있을진저! 여러 이름으로 포장된 탐욕으로 강정에, 순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오 더없이 아름답고 귀한─‘보통명사’처럼 흔한 것이 아닌!─자연과,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의 자궁 같은 저 구럼비에 대못을 박고 피눈물 터지게 한, 오 그대들 목 위에 올라타 싸늘하게 웃고 있는 저 망령에 눈 어두워 거짓과 불법도 서슴지 않는 그대들, 민주적 절차와 합리적 소통을 갈망하는 시민들마저 짓누르려는 오 내 나라 대한민국의 공권력이여, 국익이란 보기 좋은 허울 뒤에 꼬불쳐 놓은 목돈 때문에 염치도 인정도 내던져버린 저 시멘트 같은 토건족(土建族)들이여,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무지했거나 방조했거나 ‘가재는 게 편’이 되어 지지하기까지 한, 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이용하려는 이 땅 개신교의 권력가들이여, 그대들의 회칠한 마음에 용천수 터지듯 피눈물 솟는 화 있고 또 있을진저!

그러니 이제라도 멈춰라. 가슴을 치고 울며 돌아서라. 재를 뒤집어쓰고 저 강정마을에, 분단된 조국마냥 부모형제 사이도 갈라놓은 저 평화롭고도 순박했던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검붉은 피멍 자국을 남기고 대못질을 해 놓은 저 푸르른 대자연에, 눈물로 바다를 이루며 하혈하는 저 구럼비에 무릎 꿇어 사죄하라. 그리고 그대의 쇳덩이들과 폭약을 들고 돌아가라. 그것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갖다 놓으라. 오, 그대여 지금은, 발파를 강행할 시간이 아니라 그대들이 믿고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수난을 기억하며 단식과 속죄를 행하는 사순절이다. 자기반성과 절제를 통해 회개하고 피조물들과 더욱 화평해야 할 시간인 것이다. 아시는가? 그대들을 향해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신다. “오늘 네가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네 눈에는 이것이 지금 가려져 있구나. 네 원수들이 네 주위에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너를 포위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들은 너를 짓밟고 너와 함께한 네 자식들도 짓밟을 것이다. 돌 위에 다른 돌 하나라도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누가복음 19:41-44) 들리시는가?

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럼비 바위처럼 검은 새벽에, 몸뚱이가 뚫리고 찢겨져 나가 공포에 질린 구럼비 바위를 오래 쓰다듬으시며 흐느껴 우신 후, 사해(死海)보다 짠 바닷물에 들어가 눈물을 훔치고 계신다. 보이시는가, 그대여.

첨언: 이 글은 구럼비 발파 소식을 접한 3월7일에 처음 쓴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더 찬찬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강정 해군기지를 건설할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국익’이란 것이 무엇인지,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그곳이 꼭 강정이어야 하는지, 여러 보고서들에 의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은 곳임에도 왜 하필 강정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지금 당장이어야 하는지, 혹 내 생각이 편협한 것은 아닌지.

아울러 내 나라의 국가원수께서는 그가 믿는 하나님보다, 그가 섬기는 국민들보다 미국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정부는 ‘국익’이라는 허울에 스스로 속고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래에 있을’도 아닌,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도둑과 강도의 위험을 막기 위해 지금 제 식구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못질을 해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찍이 경제 관료를 지낸 슈마허(E. F. Schumacher)가 지적한바, ‘경제학적 판단은 장기(長期)보다 단기(短期)를 훨씬 중시한다’는 말이 건네는 충고의 의미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사순절에, 자꾸만 커져가는 저 강정마을의 신음소리와 우리들 가슴의 통증이 속히 사라지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박철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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