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22 19:53
수정 : 2012.03.2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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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폭풍우가 몰아치는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위에 주민들이 꽂아둔 해군기지 반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서귀포/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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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과 명동 마리 그리고 강정이
하나로 이어지는 공통점,
‘멋진 개발주의’를 위해 누군가의
역사를 허물어버리려는 시도
영화 <건축학개론>에는 서연(수지)의 고향으로 제주도 남원의 위미마을이 등장한다. 원래 이곳이 해군기지 예정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서연의 집이 있는 곳 맞은편에는 마을회관이 위치한다. 2009년, 나는 학술조사를 위해 그곳에서 여름을 보냈다. 위미항과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의 물질하는 소리와 마을 설화, 민요를 듣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고향인 효돈이랑 보목, 그리고 위미랑 강정은 정말 비슷하네!’
실제로 위미와 강정은 전형적인 제주 산남마을의 풍경을 공유한다. 위미와 강정 모두 항구마을로 애매한 폭의 일주도로를 낀 채 좁은 돌담과 감귤밭, 올레길로 둘러싸여 있다. 내 기억 속의 강정은 ‘풍림콘도와 강정천’이다. 중학교 시절 서귀포에서 가장 근사한 수영장은 강정에 위치한 풍림콘도 안에 있었고, 매주 입장료 3000원을 내고 야외 풀장에서 수영을 즐겼다. 물놀이를 즐기던 나는 문득 아래를 내려보다 강정천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나는 콘도의 수영장 대신 강정천으로 향했다. 풍림콘도의 수영장은 아주 근사한 곳이었지만, 강정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1995년 이 풍림콘도가 처음 강정에 들어설 때 8차례의 주민총회가 있었다.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충분한 정보와 설명을 들은 주민들은 결국 이 휴양시설의 입점을 허가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와 비교도 안 되는 대규모의 해군기지가 들어설 때는 단 한 차례의 설명회도 열리지 않았다.
멋진 개발주의를 꿈꿨던 제주도 지자체와 해군은 2002년 제주도 남쪽 화순에 해군기지를 설치하려 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퇴짜를 맞았고, 위미를 지목했다. 하지만 위미 역시 강하게 거부했다. 결국 제주도 행정부와 해군은 정상적인 절차로는 해군기지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후 일종의 편법으로 강정의 마을회장과 일부 해녀들을 포섭해 형식상의 동의를 얻어냈다. 마을 주민 중 90% 넘는 사람이 반대했고 이후 주민투표에서도 압도적 반대가 나왔지만, ‘이미 확정된 일’이라는 답변과 함께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처럼 ‘절차상의 하자’는 찬성과 반대 양쪽이 모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서연의 집과 같은 누군가의 공간이 해군기지라는 대규모 개발로 사실상 파괴된다는 점이다. 집과 그 집을 둘러싼 마을은 때때로 기억을 넘어서는 경험이 된다. 거주자에게 공간이 친숙해지고 거주자와 공간의 근원적이고 원본적인 체험이 수렴된 시간이 역사를 만들어간다. 사진이나 다이어리에 비교할 수 없는 내 삶의 부분이다.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엄태웅)의 어머니가 재개발될 정릉 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때문에 <건축학개론>에 서울의 재개발 지역과 제주의 위미가 동시에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현재 한국 사회를 휩쓰는 재개발 열풍에서 가장 핵심적인 곳과 그 광풍을 아슬아슬하게 빗겨간 곳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연의 놀라운 추억이 머문 정릉의 빈집과 승민 어머니의 가게는 곧 철거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위미가 가까스로 해군기지 개발을 피하지 못했다면 서연이 꿈꿔왔던 이층집은 존재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정에서는 또다른 누군가의 추억의 공간이 대신 부서지고 있다. 용산과 명동 마리 그리고 강정이 하나로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멋진 개발주의’를 위해 상당한 결함들을 묵인한 채 누군가의 역사를 허물어버리려는 시도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축학개론>은 이 모든 것들을 촌스럽지 않게 담아냈다. 열네살 때의 강정, 스물두살 때의 위미 그리고 용산과 두리반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소소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 셈이다.
문준영 제주도 서귀포시 동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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