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26 19:39
수정 : 2012.03.26 19:39
정부는 ‘반값등록금’이라는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요구를
‘구조조정’이라는 생존과
기업화의 논리로 바꾸어놓았다
김용욱 원광대 총학생회장
정부가 ‘재정지원 및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명단을 발표한 지 반년이 지났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를 계기로 각 학교에 구조조정 컨설팅을 추진하였고,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 선정된 원광대는 현재 11개 학과 폐지라는 강도 높은 처분에 직면하였다.
대학 구조조정과 그로 인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원광대를 필두로 한 현재의 구조조정 바람은 그것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원광대의 뒤틀린 현실은 정부의 근본 없는 교육정책의 상징이며 수많은 대학들의 예고된 앞날이다.
교과부는 원광대 74개 학과에 순위를 매긴 뒤 하위 15%를 폐지하는 방식을 취했다. 학과 평가의 주된 기준은 취업률과 재정기여도였고, 그 결과 기초학문과 순수예술학부에 폐과 결정이 내려졌다.
정부가 부실대학이라는 낙인을 이용해 강제한 구조조정의 본질은 명백하다. 인문학과 예술학부를 없애는 것이다. 정부 지침이라는 명분 아래서 ‘학문에 취업률과 수익률이라는 잣대는 부당하다’는 지적은 묵살되었고, 학과 폐지는 졸속으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이는 인문대에서 철학과가, 사회대에서 정치외교학과가, 미술대에서 순수예술학부가 없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철학과·정치학과·서양화과는 이렇게 사라져도 되는가? 사회의 천박함과 비도덕성이 낳은 원광대의 처참한 결과 앞에서 우리 모두가 대학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 고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국악과와 무용학과는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이번 구조조정은 부실대학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부실대학 문제가 구조조정의 발단이자 명분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정부의 대학 평가 방식이 학과 구조조정과 똑같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반값 등록금 요구가 거세던 시기에 교과부는 부실대학 발표를 통해 정부에 대한 요구를 학내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놓았다. 더불어 대학 평가의 주된 지표였던 취업률은 그대로 학과 구조조정의 기준으로 반영되었다. 이렇게 정부는 ‘반값 등록금’이라는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요구를 ‘구조조정’이라는 생존과 기업화의 논리로 바꾸어놓았다.
부실대학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학교와 재단에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열악한 재정지원에 있다. 그러나 막대한 이월·적립금을 쌓아온 학교와 법적으로 명시된 의무마저 지키지 않던 재단은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뒤에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예술과 기초학문만이 대학 위기의 근원인 양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고, 학과에 대한 어떠한 노력도 없이 단기간에 폐과가 결정되었다. 학교와 정부는 위기의 책임을 학과 폐지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전가했으며, 경제와 경쟁의 이름 아래 대학 본연의 사명과 고유의 가치를 말살했다.
정부는 대학의 기본정신을 해치는 학과 폐지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구조조정 대신 부실한 사학재단과 학교에 시정을 명령해야 한다. 정부의 책임을 대학과 학생에게 전가하지 말고 재정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그럼으로써만 대학은 청년들을 인간적으로 성숙시키고,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인재를 양성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건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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