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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05 19:32 수정 : 2012.04.05 19:32

이준희 서울시 종로구 명륜3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월요일, 두 가지 비보가 들려왔습니다. 하나, 한 청년의 죽음입니다. 우리 학교 경제학과 졸업생이 취직이 되지 않는 것을 비관하여 자취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그는, 현실의 벽 앞에서 끊임없이 좌절했다고 합니다. 29살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자취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정을 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아팠을까요. 또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둘, 한 노동자의 죽음입니다. 2000여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진행되었던 쌍용자동차 사태. 그때 해고당한 노동자 한 명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습니다. 정리해고 이후, 벌써 스물두번째 죽음입니다. 쌍용자동차는 해고자를 복직시키겠다는 2009년의 합의를 아직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는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복직시키지 않았습니다. 36살의 젊은 나이의 그가, 자신의 임대아파트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그 또한 얼마나 아팠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와 무관심한 이 사회가 얼마나 야속했을까요.

하지만 세상은 또다시 바쁘게 돌아갑니다. 두 소식을 들은 제가 슬픔과 술에 취해 아파하던 날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했습니다. 슬프게도, 저 청년과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함께 아파하지 못했습니다. 취업 준비에 한창인 청년들은, 뉴스를 확인할 시간도 없이 잠을 청했을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오늘도 야근에 시달린 채로 돌아와 잠을 청했을 것입니다. 만약 뉴스를 접했더라도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아파야 우리네 청춘은 끝이 난단 말입니까.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이 야만의 시대가 끝이 난단 말입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위로하던 이들은 청년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입니까. ‘정권교체’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는 쌍용자동차 매각의 원죄자 ‘참여정부’ 인사들은 이 죽음의 행렬 앞에서 어떠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추모하고자 합니다. 살아있을 때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이렇게라도 표현해보려고 합니다. 금세 잊혀질지도 모르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지금도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하고 있을 이들, 그리고 이제는 스물셋 혹은 스물넷이라는 숫자를 떠올릴 해고노동자들의 손을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외쳤으면 좋겠습니다. “더이상 죽이지 마라! 우리는 살고 싶다!”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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