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12 19:32
수정 : 2012.04.1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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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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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금강·영산강·낙동강에서
아니 세계의 모든 강과 바다에서
강정으로 하얀 종이배를 띄우자
종이배 하나씩 접어 강정으로 가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강정을 떠올리는데 갑자기 소름이 오싹하면서 그냥 쭈르르, 붓을 던졌다가 다시 잡았다.
언젠가 감옥에서 어려워졌을 적 내가 이대로 죽으면 아주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천장에다 입으로 새겨 두었던 하얀 종이배 이야기가 겹쳐왔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38선이라는 팻말이 여러 천년 동안 가꾸어오던 밭에 제멋대로 박혀 있어 이게 무언가 하고 빼버리다가 아랫도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온 어머니가 죽으면서 “얘야 차돌아, 엄마가 없더라도 너는 이 집을 떠나질 말거라. 왜놈들한테 끌려간 네 애비가 반드시 이 집으로 돌아오실 거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엔 꼭 가거라. 초등학교 입학은 네가 처음이니까.”
그 뒤 차돌이는 38선으로 치면 북쪽 먼 친척집에 살면서 남쪽에 있는 학교가 하도 멀어 이틀에 한 번씩이라도 꼭 다녔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옛집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올세라 기다리다가 밤이 되면 몰래 기어 북쪽으로 가고.
한번은 38선을 지키는 미군한테 붙잡혀 매를 맞고 탈이 나 학교엘 못 가게 되었다. 엄마 말씀을 어기는 것 같아 하얀 종이배에 글을 적어 흐르는 냇물에 띄웠다.
“범술아, 내가 아파. 나으면 다시 갈게.”
종이배를 주워든 미군에게 이게 무슨 암호냐, 누가 시킨 거냐고 혼쭐도 났지만 며칠 있다가 또 띄우고 돌아서는데 탕타당…, 책보만 냇물 풀섶에 걸렸더라는 안타까운 이야기.
언젠가 젊은이들이 38선이 강요된 뒤 그 벽을 맨 먼저 무너뜨린 분은 백범 선생이 아닌가요? 하고 물어,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차돌이라고 했다가 다 같이 펑펑 울기도 했었다.
요즈음은 안보, 안보 하지만 분단선이란 무엇일까. 남의 밭에다 함부로 박은 미군의 군사분계선이다. 38선이라는 글귀도 읽을 줄 모르는 이가 그것을 빼내다가 겁탈까지 당해 죽어 이 땅 어머니들의 원한이 서린 미군의 군사점령선이요, 초등학교 1학년의 학교 길을 가로막고 그 어린 것의 가슴에 끔찍한 총알을 박은 그 누구라도 주먹을 떨게 하는 범죄다.
그래서 이 땅의 강요된 분단은 곧 침략이지 우리 역사가 아니다. 우리네 참된 역사는 그 범죄에 맞서 자주 통일을 이룩하려는 피눈물 속에만 올바른 진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반역자인들 어찌 고개를 저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 미국의 군사분계선은 이 땅의 허리만 자른 것이 아니었다. 수천년 만에 처음으로 허리를 동강낸 것이요, 그 때문에 모든 통일적 발전과 인간적 삶의 저항까지 말살되고 오로지 분단을 절대적으로 떠받들질 않으면 반역과 범죄가 되는 엉뚱한 자기부정, 자기 황폐화라는 잿더미로 굴러떨어지게 되었다.
그 잿더미 속에서도 펑펑 쏟아지는 아 그 피눈물, 그것은 무엇이던가. 모든 외세는 가라. 모든 외세의 앞잡이는 가라. 억압과 착취, 분열은 가라는 흙탕물 속에 안간 샘이요, 알알이 바사진 모래알이 어영차 하나로 일어나는 뚤매(부활)였다. 그 달구름(세월)은 흘러흘러 어느덧 일흔 해.
그 안타까운 역사 앞에 고개 숙이진 못할망정 권력을 쥐었다고 저 강정에 미군해군기지라니, 나는 잘라 말한다. 그것은 수천년 일구어온 밭에 묻지도 않고 38선을 때려 박는 꼴이요, 또 그 팻말을 빼버린 한 어머니의 아랫도리에 피를 내 죽인 범죄나 다름없어 나는 다그친다.
이명박 정권은 한 정권이지, 냉전 시대가 물러간 이참에 다시금 미군기지를 만들 민족적 권한도 없고 인간적 자격도 없다. 그러니 대뜸 강정 미군기지 강행 만행을 거두라.
열나(만약)에 거두질 않을 것이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강정 미군해군기지 강행을 대뜸 걷어치우라는 글귀를 적은 하얀 종이배를 띄우자고 제안한다.
한강과 금강, 영산강, 낙동강에서 동해와 서해에서 아니 세계의 모든 강과 바다에서 강정으로 하얀 종이배를 띄우자.
그래도 아니 들을 것이면 우리 하얀 종이배 하나씩을 접어갖고 강정으로 달려가자.
그것도 못하게 막으면 몽땅 감옥으로 가자. 역사의 봄은 선거가 아니라 감옥에서 온다고 하질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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