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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휘발유값 안 내리는 속사정 |
홍창의 관동대 경영대 교수
국제유가가 대폭 떨어져도, 2000원을 훌쩍 뛰어넘은 휘발유값은 요지부동이다. 국제유가가 오를 땐, 급속히 따라 오르던 때와 사뭇 다르다. 여기에 큰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 기름값은 원칙적으로 국제유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국제유가가 오르거나 내리거나, 국내 기름값과는 인과성이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기름값은 싱가포르 국제 제품가에 그 기준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선 정유사가 원유를 얼마에 사들여, 얼마의 이익을 내고 파는지를 정부가 자세히 알 수 없게 된다. 시스템 부재로 휘발유값은 오를 땐 빨리 오르고 한번 오르면 쉽게 내리지 않게 된다.
휘발유값이 오르면 서민들은 고통스럽지만, 이익을 보는 쪽이 분명히 있다. 제일 큰 수혜자는 정부다. 우리가 내는 휘발유값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거두어 가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도 원유를 사서 정제하는 과정부터 이미 올라버린 소비자 가격 덕분에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에선 어제 사들인 원유 자체가 황금알을 낳는 투자상품인 셈이다.
높은 휘발유값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정부는 수출 가격경쟁력을 높인다고 고환율 정책을 썼다. 분명 수출 증대 효과가 있었다. 그 반대로 수입하는 원유가격은 높은 환율 탓에 30% 이상 비싸진다. 또 정부는 건설경기 부양한다고 저금리 정책을 고수했다. 은행의 큰돈은 대부분 기업에서 가져다 쓴다. 빌린 돈으로 원유 저장탱크 채우고 주유소 휘발유 탱크 가득 채운다. 이자보다는 소비자 가격이 더 큰 폭으로 뛰니 남는 장사다. 물가가 뛰고 서민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다 여기에 있다.
유류세를 인하하고 정유사의 가격 정책도 바꾸어야 한다. 특히 도입하는 원유가격 기준이 아닌 싱가포르 국제 제품가 기준은 독소 조항이며, 휘발유값 거품의 원인이다. 이걸 해결하지 않고는 휘발유값의 불합리한 구조가 계속될 것이고, 소비자 피해는 늘어날 것이다. 주유소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정량을 속이고 유사 휘발유를 버젓이 파는 일이 허다하다. 오히려 정품과 정량을 고수하는 주유소가 문을 닫을 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면서도 휘발유값은 계속 오른다. 아이러니다.
유류세의 단맛에 취한 정부는 정유사의 가격정책을 문제 삼지 않고, 주유소는 가격 하방경직성의 방패 구실에 열중하고 있다. 소비자의 분노 속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삼국지 평화시대가 언제까지 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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