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16 18:34
수정 : 2012.05.16 18:34
‘커피 위기’는 지나갔지만
주요 생산지 남미·아프리카는
저개발 상태를 못 벗어났다
박효원 아름다운가게 공정무역사업처 간사
커피가 다시 뜨겁다. 스타벅스 등 대기업 커피전문점의 연이은 가격 인상 소식에 소비자들은 “대기업이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커피전문점의 불공정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커피 가격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메리카노 한잔이 900원인 저렴한 커피전문점들도 뉴스에 오르내린다. 가격을 50~60% 낮춘 이마트의 ‘반값 커피’도 언론을 타고 있다. 바이어가 직수입해 유통단계를 줄인 것이 비결이라고 한다.
지금의 여론은 “커피 가격이 합리적으로 조정되고, 유통 구조도 투명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소비자는 가격 정보에 대해 접근하기 어렵고, 이를 이용한 대기업이 부당하게 너무 많은 이득을 가져간다는 사회적인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반값으로 커피를 마시면 그것이 해결책일까?
현재 논란이 되는 커피 가격은 ‘소비자가격’이다. 뉴스에 나오는 ‘불공정한 커피’는 소비자에게는 불리하고 기업에 유리한 가격의 커피이며, 공정위가 추구하는 커피 역시 ‘소비자에게 공정한 가격’의 커피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다.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입·유통업체 직원들은 물론, 커피전문점의 바리스타나 커피믹스 공장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지구 건너편에는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들이 있다. 이들이 받는 가격은 과연 공정할까?
커피 생두 가격이 역사상 가장 낮게 폭락했던 2000년대 초 ‘커피 위기’는 세계 무역구조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과테말라 정부는 기아로 인한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엘살바도르 커피 생산지역 아동의 85%가 영양실조 상태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커피 소비자가격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커피 위기가 지나간 지금도 주요 생산지인 남미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저개발국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유무역이 양국을 모두 부유하게 만든다는 ‘비교우위론’은 하루 3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세계 27억명 인구에게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이런 저개발국 생산자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공정무역 커피는 커피 원두를 사들일 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 또한 생산자협동조합에 ‘공동체 발전기금’을 지원하는데, 이 기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조합이 스스로 결정한다. 이뿐만 아니다. 노동자들도 공정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국내 7개 커피전문점 중 단 11.6%만 주휴수당을 지급한다는 조사가 주요 언론에 보도됐다. 이 뉴스의 파장이 컸던 것은 이전까지 아무도 아르바이트생의 수당을 인권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지금 아르바이트생들은 노동의 대가를 얼마나 공정하게 받고 있을까?
커피전문점은 역사 속에서 사회를 각성시키는 변화의 중심지였다. 프랑스 대혁명 직전 사람들이 모였던 곳은 파리의 한 카페였고, 미국인들이 보스턴 차 사건을 계획한 곳도 바로 커피하우스였다. 대기업 폭리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커피가 다시 각성 기능을 찾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비자가격을 넘어서 커피 생산과 유통 전 과정에서의 불평등을 성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저개발국 커피 농부들과 한국의 커피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소비자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반값 커피가 아니라 제값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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