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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31 17:27 수정 : 2005.07.31 17:30

발언대

무엇인가를 금지하기 위해선 타당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 금지의 주체가 그러한 막중한 책임을 회피하려들거나 그 근거에 대한 공감대를 완전히 형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 그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내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금지’란 단어다. 2년7개월간의 지리한 공방 끝에 결국 ‘음란물’로 간주된 중학교 미술 부부교사의 맨몸사진이나 ‘청소년 윤리’에 질식되어버린 청소년 두발의 자유는 그 어디에서도 금지에 대한 만족할만한 해명을 들을 수 없다. 억눌러 없어질 것들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요즘 한창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복고로 돌아가, 또 다시 장발이나 미니스커트 길이를 단속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즉, 모든 것을 다 규제하고 단속하는 게 명확한 범위도 없이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는 식의 코미디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말이다.

한 개인의 예술 표현의 자유를 사회통념의 객관적 잣대로 검열해야한다는 것이나, 청소년들이 창조적이고 다양한 분야의 경험은 길러야하지만 거기에 머리카락은 제외된다는 식의 이해할 수 없는 개념들이 지금 우리사회에 다져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 다음은 무엇이 금지될지 그저 두려울 뿐이다. 조금만 남들과 달라도 조금만 남보다 튀어도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며 급기야 나라가 망할 징조라는 푸념까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과거 우리사회가 억압과 통제와 금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수없이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다시 그 암흑 속으로 자진해 들어가려고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아직도 우리사회엔 그러한 담론을 토론할 ‘장’조차 마련되어있지 않은지에 대해선 아쉬움만 생긴다. 결국 그 억압된 욕망들의 배출구가 없는 사회가 얻게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스스로 쌓아올린 그 높디높은 벽들이 지금 당장의 바람이야 막아줄 순 있겠지만, 그래서 도덕적 명분은 달성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가서는 햇빛마저 막아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실로 답답할 뿐이다.

박미옥/경남 창원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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