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7 19:37
수정 : 2012.06.28 17:24
[왜냐면] 한 화물노동자 딸의 편지
아빠의 파업, 이유는 이렇답니다 / 강은영
우리 아빠는 25t 화물트럭 기사이다. 서류상으로는 차가 두대나 있고, 월수익도 800만원이 넘는 고소득자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아빠는 이와 정반대 상황에 놓여 있다. 차 중에 한대는 제구실도 못 하는 덜덜거리는 중고 봉고차이고, 다른 한대는 생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1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산 25t 트럭이다. 그러니 차를 소유하고 있다기보다는 빚을 짊어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다.
아빠의 실소득은 100만~200만원 정도다. 딱, 내가 서울에서 학업 접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벌 수 있는 최대 월급 정도. 아빠의 실소득을 계산하려면 빼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물론 제일 먼저 빼야 할 것은 바로 어마어마한 기름값이다. 사람들은 한달 기름값이 500만원 넘게 나온다고 하면, 그것을 뺀 나머지 200만~300만원이 곧바로 아빠의 실소득이 되는 줄 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먼저 아빠는 1년에 열두달을 꼬박 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사가 중단되는 겨울철이나 장마철에는 일이 끊겨서 사실상 1년에 9개월 정도가 소득이 있다고 할 만한 달이다. 게다가 25t 트럭에는 무려 14개나 되는 대형 바퀴가 달려 있는데, 이 바퀴들은 무거운 짐 때문에 금방 닳아버려서 1년에 적어도 2~3번씩 바퀴 전체를 갈아주어야 한다. 바퀴 하나당 가격이 45만원을 넘으니, 한해 들어가는 바퀴 값만 해도 평균 600만원이 훌쩍 넘는다. 또 한달에 한두번 정도는 공사장에 짐을 실어 나르러 갔다가 뾰족한 것에 바퀴가 찢어지곤 하는데, 그러면 또 순식간에 50만원(바퀴 45만원+수리비 5만원)이 날아가 버린다. 여기에 한달 고속도로 통행료가 대략 50만원 넘게 나오고, 한달에 한번씩 갈아야 하는 엔진오일 값이 35만원에, 운송회사에 차번호 빌린 값으로 매달 줘야 하는 돈이 25만원이다.
이렇게 한 달 급여에서 차와 관련된 뺄셈을 마구 하고 나면 수입은 점점 줄어든다. 월수입이 100만원 아래로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기사 내용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각종 보험료, 대출이자, 세금 등 차와 무관한 다른 종류의 뺄셈들도 달마다 무겁게 기다리고 있다.
힘든 아빠를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서는 내가 장학금이라도 받아야 할 텐데, 여기서도 저기서도 장학금을 받으려면 건강보험료 내역을 내놓으라고들 한다. 그러니 나는 또 한번 좌절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서류상 소득’이 800만원을 넘는 ‘부자 아빠’를 둔 탓에, 건강보험료도 그 소득만큼 터무니없이 많이 내는 ‘서류상 부자 학생’이니 말이다. 그럼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서 성적 장학금이라도 받아야 맞지만, 대학을 다니면서 늘어가는 건 공부 내공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이력뿐이니 성적은 제자리걸음인데 아르바이트 이력만 벌써 13줄째다.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얼른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어 독립을 해야 할 텐데 웬걸, 요즘 나는 공익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다. 장학금을 받든 돈을 벌든 해서 로스쿨에 진학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대변해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빠와 통화하BB 이루기 전에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아빠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무턱대고 신문사에 글을 보내게 되었다. 내 글이 신문에 작게나마 찍혀 나오면, 사람들이 화물노동자들의 실태를 좀더 생생히 알게 되고, 그 심각성을 함께 느끼게 되어 우리 아빠와 같은 화물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에서 말이다. 지금 화물연대의 파업은 정부에 ‘부자가 되고 싶다’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다. ‘먹고사는 데에 지장이 없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그들을 불법행위다 뭐다 하면서 두들겨 패기 이전에,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진정성을 갖고 귀를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강은영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화보] 2012 런던 올림픽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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