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04 18:11
수정 : 2012.07.04 18:11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경찰이 피해자의 신고를 제대로 접수하지 않아 피해자가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몇 달 전에 있었다. 잘못을 책임지겠다며 경기경찰청장이 자진사퇴를 했다. 하지만 며칠 전 비슷한 사건이 같은 지역에서 또 일어났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아 피해 여성이 5일 동안이나 고통을 받은 것이다. 어찌하여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같은 지역에서 또 벌어진 걸까. 경찰은 왜 달라지지 않은 것일까.
의문의 답은 조금만 살펴보면 금세 드러난다. 정부가 경기경찰청장의 잘못을 문책하는 대신 경찰대학장으로 발령 내고 경찰대학장을 경기경찰청장으로 앉히는 단순한 자리이동식 인사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은커녕 국민들의 눈을 속이는 장난질을 치니 힘없는 국민들만 계속 고통받을 수밖에.
이명박 정부의 이런 막무가내식 인사 정책은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결정할 때 국민의 편에서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얼마나 충성할 수 있는가만을 고려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특히 최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연임 결정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 3년간 반인권적 행보로 인해 끊임없는 사퇴 요구를 받았고, 대한민국의 인권을 후퇴시킨다는 지적을 받던 이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모든 비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태연하게 연임을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공권력이 시민들의 삶과 인격을 유린할 때 올곧은 목소리로 이를 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독립적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를 완전히 마비시켜 버리겠다는 것이다. 현 위원장은 능히 자신이 속한 조직을 스스로 파괴시킬 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라는 대로.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의도를 정권 초기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직속 기구화 하려다 시민사회의 반대로 무산되자 조직을 21%나 축소시켰다. 그리고 급기야 2009년 7월엔 본인 스스로도 ‘인권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하는 현병철 한양사이버대학장을 국가인권위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무자격자가 공무를 집행하는 자리에 오르면 국민을 모시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임명해 준 권력자에게 마치 보은이라도 하듯 철저히 ‘복무’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문화방송> 파업을 통해서도 이미 충분히 보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 역시 그러하다.
2006년에 이미 실효성 없음 결정이 났던 북한 인권 이슈를 다시 끌고 나와 기어이 ‘북한인권센터’를 설치했고,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 지역도 아닌 북한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시정하겠다는 허황된 계획에 오히려 예산은 증액되었다. 이런 억지스러운 변화는 정확하게 성적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반비례하기 마련이다. 현병철 위원장의 재임 3년 동안 성적 지향 차별과 관련한 진정 사건에 대해 단 한건의 권고 결정도 없었으며, 모두 기각·각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적소수자 인권 증진 관련 사업도 전무하다. 국가인권위의 역할 중 인권의식 향상을 위한 교육 및 홍보는 인권 침해나 차별 구제만큼이나 주요한데, 정작 공직자·교사·시민사회를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에서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시정할 만한 인권교육은 찾아보기 힘들며 그나마 있던 교육 프로그램도 2010년 이후로 사라졌다.
심각하게 배제당하고 있는 성적소수자의 인권 현실은 곧 어그러진 국가인권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국가인권위의 가장 큰 역할은 인권의 가치를 지키고, 약자를 옹호하고, 국민들을 교육하고, 국가기관을 견제하는 것이다. 국가인권위가 할 일은 아주 많다. 그 기능과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은 곧 국민의 생존과 행복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권은 공기와 같다. 인권이 없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없고 국민 대신 대통령의 권력을 모시는 이가 인권을 지킬 수는 없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연임은 곧 열릴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히 검토되고, 반드시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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