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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다시 기로에 선 두물머리의 미래 |
가처분 재판에 탄원서를 낸 시민 3691명
국토해양부에서 두물머리 유기농지로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보내왔다. 7월18일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강제철거하고 그 비용도 농민들에게 부담시키겠다고 한다. 지난달 재판에서는 경작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는데, 돌아서자마자 마치 그런 판결은 없었다는 듯이 공사를 강행할 태세다. 가처분이 기각된 그 재판에 시민 3691명이 탄원서를 냈다. 그들의 탄원서 한장 한장에서 한문장씩을 뽑아 이어보니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왜 보존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는 하나의 글이 됐다.
사랑하는 재판장님. 두물머리는 유기농지로서 3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자전거도로 공사의 시급성이 30년 유기농지 ‘두물머리’의 존재 가치와 당위성을 앞설 수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몇 글자를 적고 있습니다.
강물은 가장 고운 흙을 강가로 밀어내고 풀들은 그 흙을 잡아 가장 비옥한 땅을 만듭니다. 그 강가에서 기른 쌀과 농작물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게 된 것입니다. 이집트 문명이 나일강에서 시작되었듯 모든 문명은 강에서 시작됐습니다. 이곳 두물머리 농지가 너무나 좋은 옥토이기에 보존시켜 귀농자의 배움터 및 도시민의 자연 생태공원과 아이들의 체험농장으로 남기를 원하기에 간절히 청원드립니다.
부모님을 따라 저도 농사일을 돕는데 ‘아, 농사란 정말 힘들구나!’ 하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유기농은 더욱 힘듭니다. 언제나 잡초를 뽑아주어야 하고, 벌레가 생기지는 않나 항시 보살펴야 합니다. 농사도 잘하지 않는 이 세상에 서울 인근에 유기농이라니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도시 생활로 인해 유기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 시점에서 유기농지의 유실은 국민의 건강에 큰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가에 소풍 가고, 여름에는 물고기 잡고 목욕하러 가고, 또 여울이 내는 자연의 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도 강가의 추억을 간직하고 계시겠죠. 저는 이제 그런 자연스런 모습의 강을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습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강을 파헤치고 시멘트로 발라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30여년의 유기농 역사를 가진 두물머리에 지난 3월 초에 가 보았습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재판장님께서 만약 두물머리를 찾아보신다면 금방 자전거도로나 위락시설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두물머리가 좋은 이유는 바로 아욱과 딸기가 있어서지요.
지금 현재 그 자리에 사는 사람보다 그 땅의 미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농민들의 삶을 빼앗으면서 대부분의 시민들이 환영하지도 않는 두물머리 공사를 어째서 진행시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개발 사업은 지역주민들과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고, 삶과 환경에 끼치는 영향까지 바라보면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결국 먹고살기 위해서 아닌가요? 전 계속 두물머리에서 난 감자와 딸기를 먹고 싶은데 제가 먹을 걸 선택할 권리도 막겠다는 건가요?
두물머리에 자전거도로를 놓고 공연장을 건설할 것이라고 합니다. 전 지구적으로 화석연료에 의한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자전거는 훌륭한 교통수단이고 안전한 자전거도로의 확충은 환영할 일이지만, 누군가의 삶을 밀어내고 조성된 자전거도로에서 레저와 여가를 즐기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도시의 시민들은 이미 그러한 공간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자전거 동호인의 입장에서, 외곽지역의 자전거도로 신설이 시급하다는 설명이 그다지 와 닿지가 않습니다. 자전거도로는 자전거의 교통분담률 상승에 기여할 때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재판장님, 어떤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아무리 위대한 신부라도 정직한 농부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두물머리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셔서, 올여름에는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가 국민과 농부의 밥상에 오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곳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태껏 지기만 한 농민에게 부디 판정승 하나가 선물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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