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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18 19:24 수정 : 2012.07.18 19:24

경영학계의 원로인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가 1994년에 낸 <과학과 기술의 경영학>에 나오는 기업 생존 부등식이 생각난다. ‘제품의 가치>제품의 가격>제품의 원가’라는 부등식이다. 기업은 제품을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존해 간다. 이러한 주고받음의 관계가 가능하려면 위 부등식으로 표시되는 조건이 만족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기업은 망해 없어지고 만다.

‘가치>가격’은 기업의 효과성, 즉 고객이 얼마나 가치를 느끼는 제품을 만드느냐는 ‘창의성’과 관련된 부분이고, ‘가격>원가’는 얼마나 경쟁력 있는, 즉 비용이 적게 드는 제품을 만드느냐는 ‘효율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짜장면 한 그릇에 원가가 2000원이면 가격은 최소한 그보다 더 받아야 하고 또 고객이 맛있다고 느껴야(2000원 이상의 가치를 느껴야) 짜장면집이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의미를 지닌 공식이다. 윤 교수의 또다른 저서 <삶의 정도>에서는 이를 더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요즘 언론에서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한편으로 고마움을 느끼지만 전문가적인 의견을 제시할 때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따져 보는 진지한 고민과 탐구를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지난해 기준으로 원가가 100원이 드는데 87.4원을 받고 있다. 원가에 미달하는 요금 체계인 것이다. 전기라는 재화를 생산하는 데 들어간 비용의 87.4%만을 받고 견딜 재간이 있는 기업이나 상인이 없다는 것은 위 부등식을 언급하지 않아도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일부에서 한전의 자구노력을 이야기하기만 발전회사로부터 전기를 사오는 구입전력비가 2011년 총원가 기준으로 비용의 82.8%를 차지하고, 감가상각비 등 관리 곤란한 비용을 제외하면 관리 가능한 비용은 4% 수준에 불과한 상황으로 자구노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한전의 자구노력만으로는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상쇄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매출액이 원료비 상승분을 못 따라가서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한국구역전기협회의 강창훈 사무국장의 “사업자들 모두 사업을 지속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는 말에서 동병상련을 느낌과 동시에 우리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한전의 재무책임자로서 두 차례 국외 투자자 설명회에서 4년 연속 적자를 끊고 올해에는 반드시 흑자로 돌아서도록 경영혁신을 이루겠다고 다짐한 일과, 주주총회에서 손해를 배상하라는 성난 주주들의 추궁 장면이 스쳐간다. 공익성과 기업성의 조화라는 책무는 있지만 공기업도 어디까지나 기업이다. 더욱이 51%의 정부 지분을 제외한 49%의 주주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 관련 법 규정을 준수하려는 의지가 정부에 반기를 들거나 소액 주주들의 소송이 두려워서 면피를 하려 한다는 보도를 볼 때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경영진은 없다고 생각하며, 그런 인격적 폄훼는 없었으면 좋겠다.

문제를 찾아 그 해결 방안을 찾는 게 경영이고, 기업과 그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도 원가 이하의 가격이 갖는 의미를 너무나 잘 알 텐데, 입장에 따라 편의적 해석을 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전기는 연료비가 3분의 2가량 들고, 강한 전기라서 잘못하면 생명을 다칠 수 있음에도 자기 주변에는 전주 한 본도 못 세우게 하는 현실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동료들을 볼 때, 연료비도 안 들고 약한 전기라 훨씬 사업하기 쉬운 통신사업과 비교해 보기도 한다.

2011년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비지출을 살펴보면 전기요금을 위해 월평균 4만6000원을 지출한다. 이에 비해 통신비 지출은 월평균 약 14만7000원에 이른다. 그러면 전기가 통신에 비해 약 3분의 1 이하의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싸야 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삶의 정도와 정도경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자문해 본다.

박규호 한국전력공사 기획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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