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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아직도 면접 때 여성의 나이 물어보는 한국 사회 |
함상옥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대학원 졸업생
나는 약 2년 반 동안 유명 외국계 금융권 회사에서 근무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도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으로 치열하게 유학을 준비했다. 그 결과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명문대학교의 대학원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국인으로 다른 나라 학생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일종의 사명감과 먼 훗날 그곳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한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원 졸업 뒤 워싱턴에 있는 국제금융협회라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취업 뒤, 2년 동안의 호된 미국 생활은 나의 애국심을 한껏 고취시켰다. 타국에서 소수자로서, 여성으로서 또한 남성들이 지배적인 금융권에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직접 겪어본 자만이 그 어려움을 진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결심을 한 것은 이런 어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껏 갈고닦았던 실력이며 재능을 고국에서 마음껏 펼치고 싶은 소망도 한몫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직업의 기회를 찾는 나를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29살이란 나의 나이였다. 대부분의 기업은 나를 노력과 끈기와 열정과 또 국제무대에서 쌓은 경력과 학력을 갖춘 취업 준비생으로 보지 않고, 단지 1983년에 태어나 올해로 만 29살이 된 미혼의 여성으로만 보았다. 1차 서류심사에 통과해 면접을 보러 가면, 공식면접이 끝난 뒤 인사부 직원은 나에게 와서 조용히 묻고 가곤 했다. 혹시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결혼은 했는지, 곧 결혼할 계획이 있는지. 심지어는 어떤 회사의 경우 면접중 대놓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남자친구는 있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는 몇 살인가?’ 특히 이런 질문을 한 면접관은 모두 여성이었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당신은 아는가? 이런 질문들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당신이 나에게 했다면 당신의 회사는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남자였다면 과연 면접관들이 그러한 질문을 했을까. 나와 같이 1983년에 태어나 올해로 만 29살이 된 남자 구직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나는 한국에서 구직 기간에 한 12번의 인터뷰에서, 한군데도 빼놓지 않고 나의 나이와 결혼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심지어 몇몇 정부기관의 공식 입사지원서에는 아직도 키와 몸무게를 적는 난이 있었다. 처음엔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걸 물어보는 회사가 있나 하며 당황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았을 때는 모욕감마저 들었다. 나중엔 아직도 여성에게 나이와 결혼이란 잣대로 기회마저 주지 않는 한국 사회와 그런 것을 제도적으로 규제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 탄식하고 분노했다.
노동인구의 50%나 되는 여성을 나이와 결혼이라는 낡고 낡은 편협한 잣대로 판단하여, 능력 있는 여성의 기회를 처음부터 아예 짓밟아 버리는 이 사회를 당신은 과연 선진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나라가, 면접 때 나이와 결혼의 유무를 묻는 것을 제도적으로 금지하여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미국과 북유럽 국가와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도대체 한국 사회는 언제까지 나이라는 굴레에 속박되어,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를 여성에게 수갑처럼 채워놓아 재능 있고 전도유망한 여성들을 버려둘 것인가.
한국의 노동경쟁력을 생각해 봤을 때,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숙고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지금 당장 바뀌기는 힘들겠지만 한국의 정책이 조금이나마 여성을 보호하고, 그 결과 능력 있고 재능 있고, 열정 있는 여성들이 취업에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좀더 발전된 한국 사회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그들이 묻는 나의 나이와 결혼에 관한 질문에 순한 양처럼, 그리고 취업의 절박함으로 성실히 대답만 해왔지만, 앞으로 그런 질문이 나에게 또다시 주어진다면, 그땐 당당히 이렇게 대응할 것이다. 나이와 결혼이라는 이슈로 여성의 열정과 능력과 재능을 성급히 판단하거나 속박하거나 제한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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