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냐면]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와 그 이후 / 김광기 |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은 그냥 흘려보낼 소식이었겠지만 국립대학에서는 최근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1988년 초 민주화 바람을 타고 전남대에서 처음 도입돼 전국으로 확대 시행돼 왔던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전국 38개 국립대학 중 35개 대학이 기존의 직선제를 폐지했다. 나머지 목포대·부산대·전남대도 곧 개정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국립대학의 ‘백기투항’ 또는 ‘굴복’이라는 어휘를 구사하며 총장 직선제는 당연히 폐지해야 할 구시대의 악습 정도로 폄훼했는데, 과연 국립대학은 직선제 폐지를 밀어붙인 교육과학기술부에 백기투항한 것일까? 그 속사정은 무엇이며, 국립대학의 미래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먼저 국립대의 ‘백기투항’ 운운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주요 국립대 중 몸집이 큰 경북대·부산대·전남대의 대다수 교수들은 직선제 폐지에 끝까지 저항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두고 행한 전체 교수 투표에서 전남대를 필두로 경북대와 부산대의 58~70%에 달하는 교수들이 직선제 고수에 표를 던졌다. 그러나 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교과부에 직선제 폐지를 하겠다고 두 손 들고 나간 이들은 바로 해당 대학 총장들과 보직교수들이다. 그들은 교과부의 행·재정적 불이익 압박 때문에 빚어진 어쩔 수 없었던 행위라고 자신들의 처사를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총장 직위를 다른 자리를 위해 써먹을 일종의 좋은 경력 정도로 여기던 과거의 총장들의 행태와 또한 총장 눈밖에 나길 원치 않고 어쩌면 쉽게 총장에 지명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일부 보직교수들의 얄팍한 꼼수에서 비롯된 월권행위임을 웬만한 교수들은 다 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월권행위가 중단되지 않고 법제화된다면 국립대학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에 앞서 먼저 국립대 총장들에게 닥칠 미래부터 언급해 보자. 이를 위해 참조할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지난 6월 <시엔엔>(CNN)과 <유에스에이(USA) 투데이>는 지성의 상징에서 파리 목숨으로 전락한 미국 공립대학교 총장들의 근황을 집중 보도했다. 보도를 보면 위스콘신주립대, 오리건주립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루이지애나주립대, 일리노이주립대, 유시(UC)버클리대, 버지니아주립대의 총장들이 이사회의 압박에 자진사퇴하거나 무자비하게 경질되는 수난을 겪고 있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주정부의 재정지원이 급감하자 재원을 염려하는 이사회가 총장이 외부에서 돈을 얼마만큼 끌어왔나를 가지고 총장을 평가하고 닦달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무리 학내 구성원들의 높은 신임을 받는 총장이라 하더라도 이사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차없이 해고의 칼날을 휘둘러 댔다. 어느 누구도 명망 있는 총장을 구해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교수회에서 직선제로 뽑힌 총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국립대 간선총장의 말로도 이와 똑같을 것이다. 즉 단순 일회용으로 끝날 것이 뻔하다.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은 윗선이나 이사회의 눈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보따리를 싸야 하는 이는 교수회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월권행위의 처절한 대가다.
그래서 오히려 미리 고소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 수만 없는 것이 이런 일들이 총장에만 머물러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폐해는 국립대학 현장에 고스란히 뻗칠 것이다. 교육 본연의 모습은 사라지고 치열한 경쟁과 시장 논리만 판칠 것이 뻔하다. 관료들의 브레이크 없는 재단에 의해 마지막 남은 고등교육의 보루가 절단나고야 말 것이다. 솔직히 총장은 누가 되든 상관없다. 문제는 이를 뽑는 교수회가 무력화된다는 데 있다. 결국 몇몇 총장들의 이기심에 의해 교수들의 결집된 힘은 분쇄되고 대한민국은 사회 비판 기능의 축 하나를 잃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교수들의 응집력이 사라지고 개개인의 얄팍한 이기심과 공명심만 남을 상아탑. 누가 이들을 존경의 눈으로 볼 것이며 이들에게 나아갈 길을 물어볼 것인가. 정녕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모든 책임은 교과부 장관과 총장들이 져야 할 것이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