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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정의롭다’는 법은 어디에 있는가 |
최이학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2동
30m 120t의 거대한 천공기가 차를 날벼락처럼 덮치는 순간 노모와 아들의 생은 갈렸습니다. 노모는 질긴 인연의 줄을 놓고 먼저 떠나간 아들이 여느 때처럼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모는 젊었을 때부터 심한 차멀미로 여행은커녕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아들이 결혼한 이후로 수십년 동안 한달에 한번 꼬박꼬박 잊지 않고 찾아오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들을 만나 맛난 음식 먹고 한달 생활비를 받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고단하고 천대받는 삶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노모에게 가족들은 아들의 죽음을 차마 알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을 알기나 한 것처럼 노모는 입맛이 없다며 열흘이 넘도록 밥을 먹지 못하고 링거를 맞고 누워 지냈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노모는 무역 일로 중국에 갔다는 말만 믿고 중국은 춥다며 양말과 내의를 잔뜩 사서 아들에게 줄 것을 신신당부했습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인사할 겨를도 없이 떠났겠느냐며….
2011년 11월16일 그 아들은 집안일로 평상시보다 일찍 사무실을 나섰고,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을 지날 때 120t 천공기가 그를 덮쳤습니다. 자동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습니다. 사고 뒤 9개월이 지났지만 아들을 죽게 한 사람들은 단 한명도 구속되지 않았고, 사건 담당 검사가 3번이나 바뀐 채 사건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얼마 전 도로를 막고 억울함을 시위했다고 해서 구속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공기를 쓰러뜨려 3명의 사상자를 내고 총 8000여가구에 정전 피해를 입히고 일대 교통을 마비시킨 쪽은 한명도 구속되지 않은 사건도 있습니다.
거대한 천공기에 처참하게 맞아 죽은 아들의 억울함과 그 아들의 죽음도 모른 채 하염없이 기다릴 노모의 슬픔을 외면하고 있는 이 사회의 법! 그 정의롭다는 법은 천공기보다 더 거대한 힘으로 힘없는 이들에게 또 한번 폭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무거운 기계만 봐도 가슴이 막히고 짓눌리는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장이 끔찍하게 죽어갔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사고를 낸 원청업체가 사회의 양심이 돼줘야 할 유명한 종교재단임에도, 유가족에게 정중한 사과는커녕 비아냥거리며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있는 처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약자의 슬픔과 억울함을 어디에 가서 어떻게 하소연하면 되는 것입니까. 천공기에 깔린 차량의 비참한 모습은 정의와 공정을 실현해야 할 법 앞에서 부당하고 억울하게 짓눌린 이들의 또다른 모습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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