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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제도 밖 청소년들에게도 배움의 권리를 / 이철국 |
요즘 낮에 광화문 앞에 가보면 ‘제도 밖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권리를’이란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대안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만날 수 있다. 대책 없이 더웠던 올여름을 관통하고 가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들은 일반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을 ‘학업중단학생’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학업을 중단한 적이 없다. 더 넓은 세상에서 진짜 배움을 익혀가고 있다. 이런 표현에선 희망의 교육을 외면하고 계속 절망의 교육을 지속시키겠다는 오만한 의지를 읽을 수 있을 뿐이다. 한번 따져보자. 교육기본법 제2조 ‘교육이념’은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을 구유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이렇게 되어 있다. 공교육과 대안교육, 과연 누가 교육이념을 잘 구현하고 있는가? 지금 당장 따져 묻고 싶다. 공교육은 이미 개인과 가문의 영달을 위한 사교육화된 지 오래이고, 그나마 공공성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대안교육이다.
12살에서 18살까지 청소년들을 모아서 한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는 일명 ‘헝거게임’이란 게 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이 게임에 참여해야 하는가? 지금은 한해에 탈학교 청소년이 7만명인 시대다.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 해체된 가정이나 극빈층 아이들이었지만 최근에는 차상위 계층과 중산층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봄 1인시위에 나선 학생들이 스스로 희망의 학교를 개교하기도 했다. 이건 낙오자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안과 희망을 찾는 인정투쟁으로 봐야 한다. 자신의 삶과 인격이 통째로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청소년, 여성, 가난한 이웃,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가 심한 나라 아닌가?
교육혁신의 핵심전략은 차별 없는 평등이다. 교육기본법 제4조 ‘교육의 기회균등’ 조항은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 있어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음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제는 더이상 대안교육에 대한 지원을 미룰 명분도 이유도 없다. 진보적이라는 교육감과 교육위원들조차 이를 외면하는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제도 안과 밖을 아우르는 보편적 교육복지라야 보편성이라는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자치단체 중 대안학교에 급식비를 지원하는 수원시처럼 우선 무상급식을 당장 실시할 수 있고, 공교육 무상교육의 70% 정도를 대안학교에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대안교육은 태생부터 살인적 경쟁을 통한 강자독식 사회를 거부하고 우리 사회를 상부상조와 협동의 정신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아인슈타인은 “별을 보고 별에서 배우라”고 말했다. 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별은 일생을 바쳐서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를 만들고, 마지막 생을 마감할 때 초신성 폭발로 모든 것을 우주로 되돌려 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극치라 할 만하다. 그 덕분에 너와 나, 인류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대안교육의 목표는 바로 초신성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간을 만들고자 함이다.
우리 사회는 20년 가까운 실천의 경험을 갖고 있는 ‘대안교육의 생각’을 받아들여서 힘을 합쳐야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 폭행’, ‘여의도 칼부림’ 등등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고 있다. 그들에게 돌팔매질을 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타르의 늪으로 내 자식들을 내몰고 있지는 않은가? 지난해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테러 참사의 범인이 하필이면 한국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한국의 무엇을 모델로 삼았는지 섬뜩하다. 반면 더 큰 민주주의와 다양성과 관용이 우리의 대답이라고 한 노르웨이 총리는 감동과 동시에 암시를 줬다.
아이들의 반사회적 행동이나 어른들의 묻지마 범죄 행동을 치료하는 기적의 알약은 없다.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는 공생과 정의의 사회로 거듭나는 수밖에 없다. 교육 관계자들이 교육에 있어서 대안을 찾으려고 핀란드에 갈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찾아보면 좋겠다. 정의로운 교육, 협동교육은 핀란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습되고 익숙한 무기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이 되는 길이 대안교육에 있다고 믿고 있다.
이철국 중등대안 불이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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