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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녹색성장 전시장 된 세계자연보전총회 |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오늘(6일)부터 10일간 제주에서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개최된다. 회의는 국가, 비정부기구(NGO), 전문기관 등 1224개 회원단체가 가입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4년마다 주최하는 대표적인 국제 환경행사다. ‘인간, 사회, 경제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자연환경의 관리를 향상시킬지’, ‘환경과 개발을 둘러싼 이슈들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한쪽의 노력만으로 환경보전의 뜻을 달성할 수 없으니, 환경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보전에 책임이 있는 사회 각 분야가 협력하고 소통하자는 것이 취지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 지원특별법’까지 제정해 지원하는 행사가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다. 우선 물량 공세가 과하다. 특별법에 의해 개최 지역의 도로, 교통시설, 상하수도 시설 등 기반시설의 건설은 물론, 해외 참가자 500명에 대한 비용, 한국 취재기자들의 체류 비용, 한국 참가자 3000명의 입장료, 정부가 후원하는 단체들의 발표 비용까지 수백억의 예산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있다. 행사 유치를 위해 100만 서명운동을 진행하더니, 이제는 행정기관과 360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까지 동원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브랜드를 제고하고,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이 새로운 경제발전의 모델로서 높이 평가받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행사의 내용도 민망하다. 한국 정부가 적극 배치한 워크숍들의 제목은 ‘녹색성장과 자연+’, ‘녹색성장의 지구 전략’, ‘녹색성장을 위한 국제협력’, ‘녹색성장과 성(gender)’, ‘지속가능한 녹색성장을 위한 아세안과 한국의 파트너십’ 등이다. 주요 행사인 ‘세계 지도자 대화’는 ‘자연+발전: 녹색성장, 신화 또는 현실’이란 제목이고, 양수길 녹색성장위원장 등이 핵심 발언자다. 더 나아가 한국 정부는 ‘자연보전과 경제성장을 위한 지속가능발전 전략으로 녹색성장을 추진하자’는 결의안까지 제출했다.(Motion 140)
다른 한편으로, 정부의 방향과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철저히 억압하고 있다. 정부는 행사장에 펜스를 두르고, 경찰을 동원해 엔지오들의 접근과 행진을 금지할 예정이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지원했던 미국 국적의 차임옥씨는 지난 4일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채 강제로 추방됐다.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비판적인 한국의 단체들은 초대받지도 못했고, 감시를 당하는 처지다. 4대강 사업 등을 다룬 포스터의 게시 신청도 수용되지 않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단체들의 발표문에까지 간섭해 수위를 조절했다. 한국은 환경 이슈가 없는 나라로 비칠 정도이고, 엔지오들은 자신들의 국제회의에 참여까지 봉쇄당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의 태도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행사장으로부터 7㎞ 떨어진 강정마을의 환경 이슈를 외면했고, 한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다며 부스 신청도 거절했다. 결국 세계자연보전총회 개최 국가로는 처음으로 엔지오로부터 규탄받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로부터, 또 한국 기업으로부터 과도한 후원을 받으면서, ‘녹색성장 홍보 공간’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최근 들어 국제회의들이 기업에 포섭되고 매수됐다는 평가가 많은데 이번 행사는 이러한 의심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제주자연보전총회는 사실상 관제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 나치 히틀러의 선전수단에 불과했듯이 제주도에서의 자연보전총회는 한국 정부의 이벤트로 전락했다. 민간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돈에 의한 흥정이 횡행하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나마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상식이 살아 있는 조직인지는 한국 정부가 제출한 결의문 140번의 통과 여부로 확인이 될 것 같다. 환경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4대강 사업과 핵발전소 증설을 내용으로 하는 녹색성장’을 자신들의 비전으로 결의할지 궁금하다. 지금으로선 향방을 예측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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