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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05 19:25 수정 : 2012.09.05 19:25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이슬비 부산대 국어교육과 4학년

중무장한 군인들이 마을로 들어섰다. 온 나라를 뒤흔든 전쟁의 와중에도 조용했던 이 마을에 군대가 주둔하자 총소리가 울렸다. 군대는 민간인 430명을 무참히 학살해 시신을 우물에 던졌다. 1966년 베트남 빈호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마을을 불태우고 떠난 군대가 한국군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밝혀졌다. 비슷한 일은 프랑스에서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파리에서는 인종 청소라는 명목 아래 이틀 동안 유대인 1만3100명이 붙잡혔고, 이들은 닷새 만에 아우슈비츠에서 참혹하게 죽었다. ‘벨디브(겨울 벨로드롬) 검거사건’이라 불리는 이 일은 프랑스 역사의 오욕이다.

두 사건은 한국과 프랑스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의 과거사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60년 전 프랑스 사건보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사를 대하는 두 나라의 태도 때문이다. 프랑스는 올해 ‘벨디브 검거사건’ 발생 70주기를 맞아 당시의 기록들을 공개 전시해 젊은이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려 한다. 승전국으로만 인식하고 과오를 잊을지도 모르는 후대를 위한 교육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으나 그 이후 곧 잊혀졌다. ‘빈호아 학살사건’은 여전히 국민의 관심 밖에 있다.

베트남 빈호아에는 학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위령비와 한날한시에 죽은 이들의 집단묘지는 당시의 참혹했던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무덤의 대부분이 엄마와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가족묘란 사실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현재 이곳을 찾는 추모객 중에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하늘을 찌르는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는 문구가 새겨진 ‘한국군 증오비’만이 과거를 고발하고 있다. 이를 보며 자라는 희생자의 후손들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베트남과 한국 사이에 벌어졌던 아픔이 떠오른 건 연일 일본 정치인들이 벌이고 있는 과거 왜곡 행위 때문이다. 이들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까지 부정하고 나서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우리가 과거를 부정하는 몰염치한 일본인들처럼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우리도 우리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역사적 상처를 찾고 돌봐야 한다. 빈호아 학살사건의 희생자 후손들이 혹여 한국에 품고 있을 분노가 남아 있지 않도록 과거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인 독일에는 ‘생명의 행진’(March of life)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치 가해자 자손과 홀로코스트 희생자 후손들이 함께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순례한다. 이들이 함께 걷는 길 위에는 용서와 화해, 치유가 있다. 가해국이 피해국의 상처를 보듬으려는 노력은 그래서 아름답다. 이런 노력은 복잡한 과거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라 간에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생명의 행진’이 일본과 한국뿐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에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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