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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4 18:16 수정 : 2005.08.04 18:17

이거룡/ 동국대 연구교수 · 인도철학

독자칼럼

내가 네 나이 적에 방학은 마냥 노는 것이었다. 방학숙제라는 게 있었지만, 그건 노는 아이 방학을 정당화하는 면죄부 같은 것이었다. 방학이 끝나기 전 사나흘 동안 후딱 해치우는 통과의례였다.

방학이란 글자 그대로 공부를 놓는 것이다. 그래야 한다. 방학이 아주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방학이 노는 기간이라고 해서 무의미한 게 아니다. 노는 것은 대나무가 틈틈이 성장을 멈추고 마디를 맺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언제부턴가 방학은 오히려 한층 더 집요하게 공부하는 기간으로 변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으로 독서실로 뛰어다녀야 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방학이잖니? 그건 방학이 아니다. 차라리 심화학습 기간이라 해야 한다. 실로 이 ‘시대의 우울’이다.

미안하다. 나에게는 이 시대의 우울을 멈출 힘이 없다. 시대의 우울을 묵묵히 건너가는 너를 바라볼 뿐, 노는 것이 공부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지 못하는구나. ‘성적’이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이는 너를 멀거니 바라보기만 할 뿐, 손을 내밀어 끌어내지는 못하는구나. 이런 말이 있다. “극복하지 못할 일이라면, 차라리 즐겨라.” 아직 너에게는 다소 받아들이기 버거운 말이다. 기왕에 건너야 할 시대의 우울이라면, 질질 끌려갈 것이 아니라 팔 걷어붙이고 팡파르를 울리며 건너자는 말이다. 이 시대의 우울을 용서하자. 용서는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귀한 선물이다.

‘장기수’라고 들어 봤니? 십 년 이십 년 오랜 기간 동안 옥살이하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너는 장기수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고교 3년이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더욱이 방학마저도 심화학습기간으로 변질된 지금의 세태를 생각한다면, 너의 학교생활도 옥살이라면 옥살이다. 장기수가 출감일을 잊어야 하듯이 너도 우선은 ‘언제쯤에나 이 힘겨운 공부에서 벗어나려나.’하는 생각을 놓아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때로는 바로 코앞만 내려다보며 걷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너에게 지금은 바로 그런 시기다. 그러다 보면, 문득 시대의 우울을 건너 저편에 서 있는 너를 볼 것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거룡/동국대연구교수 인도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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