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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10 19:38 수정 : 2012.09.10 19:38

여론이 들끓고 있다. ‘나영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나주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분노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심지어 ‘물리적 거세’까지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흉악 성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의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한 격렬한 분노에 충분히 공감하고, 때마침 쏟아져 나오는 정책 제안들의 취지도 너끈히 이해하겠지만 필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사회의 움직임들에 조심스럽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우선, 우리나라의 성범죄자 처벌의 입법 수준이 이미 충분히 강력한 수준에 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제도상’으로 우리는 거의 동일한 수준의 처벌을 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그런 ‘제도’들이 제대로 시행·집행되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즉 국회에서는 이미 강력한 처벌을 주문해놨는데 사법부에서 이를 따라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괴리가 생긴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법관들의 인식이 대체로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문제의 본질은 우리 사회(특히 사법부)의 성차별적 인식과 가부장적 문화에 있는 것이지, 입법과 제도의 미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설사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 효과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형사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범죄발생률 감소다. 과거의 추악한 범죄행위에 대한 응보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강력한 처벌이 우리에게 안전한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강력한 처벌과 범죄 발생 감소율 사이에 별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범죄학계에서는 상식이다. 오랜 역사에 걸친 수많은 실증적 연구들이 ‘처벌이 강해져도 범죄발생률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징역형뿐만 아니라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와 같은 형사정책상의 제도들이 대부분 효과 없는 것으로 드러났거나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물론 그렇다고 처벌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처벌은 있어야 한다. 처벌이 없으면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역의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효율성’이다. 우리는 지금 더이상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정책에 너무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징역형을 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형자 1인을 가둬두는 데 드는 비용이 한달에 100만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만약 지금 여론의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교도소에 갇힐 사람은 몇 배나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재원은 다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다른 제도들도 마찬가지다. 재범 방지를 위해 마련한 전자발찌 제도는 시스템 구축에 쏟아부은 예산만 몇백억원에 육박하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거세 제도도 성범죄 충동 억제 효과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아무리 많은 범죄자들에게 발찌를 채우고 거세를 한다 해도, 성폭력 범죄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또다시 강력한 처벌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난센스라고 본다.

공짜 점심은 없다. 예산과 인력이 한정돼 있다면 좀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계속해서 강력한 처벌만을 고집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이야 일시적으로 후련해질지 모르겠지만 성폭력 예방 교육과 교도행정 개선, 성폭행 피해자 처우 개선 등 많은 분야에서 총체적 부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또다른 형태의 성폭력 범죄를 낳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는 성폭력 범죄의 증가라는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이런 미래가 바람직한 것일까?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져서 범죄의 공포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본다.

이상윤 성균관대 법학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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