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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12 19:38 수정 : 2012.09.12 19:38

조원형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새로 시작한 텔레비전 드라마 한편이 방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 등장인물이 화려해서라거나 요즘 관심사를 반영한 내용이어서가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라는 제목 때문이다.

‘차칸남자’는 ‘착한 남자’를 잘못 쓴 것이다. ‘착한’을 ‘차칸’으로 썼고, 띄어쓰기도 틀렸다. 한국방송공사 쪽의 해명을 들어 보면, ‘착한 남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쁜 남자’인 주인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제목을 ‘차칸남자’라고 썼다고 한다. 그런데 맞춤법을 일부러 틀리게 씀으로써 사전적인 의미와는 다른 뜻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설명은 궤변에 가깝다. 같은 말인데도 표기를 다르게 하면 다른 뜻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합당한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처럼 상식 밖의 표기를 함으로써 시청자의 눈길을 자극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차칸남자’는 세간에 폭력 조직의 구호로 알려진 ‘차카게 살자’마저 연상케 한다. 이들이야말로 자기들이 실제로는 착하게 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구호를 쓰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무리 반어적이고 모순적인 면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폭력 조직의 행태와 유사한 발상으로 제목을 짓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설령 이야기 구성상 등장인물이 맞춤법을 어긴 표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더라도 드라마 제목까지 그렇게 쓰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제목은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물론 보지 않는 사람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제목에 오류가 있을 경우 제작진의 본래 의도와는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기업이 광고에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내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광고의 본뜻은 다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초등학생들이 마치 광고의 표제어처럼 제시된 문구만을 기억하고 시험 문제에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답했다고 한다. ‘차칸남자’는 이처럼 한창 어문 규범을 익혀야 할 어린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무리 ‘예술적 허용’이라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사회의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는 표현은 이처럼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만큼, 드라마 제목에서 일부러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방송은 단지 세태를 반영하기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청자의 문화와 정신을 이끌어 가는 도구이기도 하다. 국어기본법 제15조2항에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등의 대중매체는 국민의 올바른 국어 사용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방송공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방송사 가운데 하나로서,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 또한 한국방송공사는 국립국어원과 협약을 맺고 방송언어가 모범 한국어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바도 있다. 방송사에서 맞춤법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은 국민의 올바른 국어 사용에 이바지하는 일이며 방송 언어가 모범 한국어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회적 책무를 지니고 있는 한국방송공사에서 맞춤법을 어긴 표현을 굳이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케이비에스(KBS)국어문화원을 운영하고 ‘우리말 겨루기’, ‘바른 말 고운 말’ 같은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차칸남자’라는 드라마 제목을 내보내는 것은 모순된 일이다.

이 드라마도 종영하고 나면 이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고, 그때쯤 되면 ‘차칸남자’라는 제목도 더는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잘못된 제목을 붙인 드라마가 아무런 제재 없이 그대로 방영된다면 이후에 제작될 드라마의 제목을 정하는 데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이 드라마가 이른바 ‘한류’ 상품으로서 외국에 수출된다면 한국어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에게 한국어에 대한 그릇된 지식을 심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착한 남자’를 ‘차칸남자’로 쓰는 방송이야말로 ‘착하지 않은’ 방송이다. 한국방송공사는 적절하지 못한 드라마 제목을 주저하지 말고 바로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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