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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17 19:53 수정 : 2012.09.17 21:00

역사과목 선생들은 사표를 써야는 것 아닌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역사인식을 접하고 역사 선생으로서 매우 부끄러워서 나온 혼잣말이다. 박 후보 관련 보도를 열심히 지켜본 사람들도 물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이 뭔데?’ 그렇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에서 첫 번째 문제가 역사에 무관심한 듯 역사에 관해서 발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기야 그는 어떤 중요한 사안도 성실하게 말하지 않고 <한겨레>의 한 논설위원이 지적한 대로 “외마디 전달법”으로 일관해왔다.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은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나온 몇 마디 말에서 살펴볼 수밖에 없다. 하나는 대선 경선 후보로서 5·16과 유신에 관한 질문에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그리고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기자회견에서는 “자꾸 과거로 가려는” 태도를 비판했다.

여기서 우선 박 후보의 사고가 얼마나 얄팍한지 확인된다.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발언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는 판단할 머리도 스스로 의사를 표명할 입도 지니지 않는다. 박 후보는 대학생이면 누구나 아는 영국 역사가 이 에이치 카(E.H. Carr)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규정도 듣지 못했고, 성인이면 누구나 과거와 현재를 살펴 공동체 일에 참여하고 미래를 형성한다는 민주주의 전제에도 무지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박 후보는 과거와 역사에 대한 관심 자체를 ‘과거로 자꾸 가려는 것’이라고 배격하기에 이르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박 후보가 그런 어불성설을 반복하여 발설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도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5년 전의 “줄푸세” 구호는 사라졌지만 그의 역사인식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그가 1970년대에 붙잡았던 “구국”이라는 단어가 30년도 더 지난 2007년에 “구국의 결단”으로 재등장한 데서 확인되듯이 박 후보에게 “역사의 판단”은 그처럼 근사해서 계속 효용성을 갖는 단어인 듯하다.

문제는 이러한 거창한 관념들에 사로잡히면 온당한 현실 파악은 실종되기 마련이라는 점인데 우리는 그 예를 박 후보의 “구국여성봉사단 총재” 경력에서 보게 된다. 부친이 “구국의 결단”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10년 넘게 통치중인 나라에서 딸이 또 “구국”에 나서다니, 이들 부녀에게 국민은 자신들의 “구국” 사업에 순전히 피동적 객체일 뿐이다. 이제 대통령 후보인 그가 유신체제와 자신의 행적을 설명하지 않고 공허한 “역사의 판단”에 미루는 것은 현실 파악의 미비에 더해서 비겁한 회피와 기만의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박 후보의 역사인식은 독선과 불통의 산물이어서 흉기가 될 위험성이 크다. 박 후보 주변인사들도 당연히 ‘역사의 판단’을 운운하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잘 알고 만류할 것이다. 주변의 조언에도 귀 막는 이런 수준의 독선과 아집이라면 반대자들을 ‘역사관이 의심스럽다’거나 “구국”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태연히 공격하고 숙청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설마 그러겠느냐며 마음을 달랜다고 해도 박 후보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그리고 지난 일들을 역사의 판단에 맡겨놓는다면, 어떤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해 나갈 것인지 매우 불안하고 걱정된다. 어떤 기반에서 일본·중국·미국 등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인지? 그의 ‘국정운영’은 기존의 정치·경제·사회발전의 역사에 눈감은 채 어디로 향할 것인지?

“과거 역사에 관해서 가능한 한 전부 배워라. 왜냐하면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해볼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니까.” 영국의 대정치가 윈스턴 처칠이 8살짜리 손자에게 당부한 말이다. 그리고 미국의 국립문서기록 관리청은 “과거는 (미래의) 서막”이라는 셰익스피어의 글귀를 입구 현판에 새겨놓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 짓는 이런 기본적 역사인식을 역사 선생들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인물에게 가르치는 데 철저하게 실패했다.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 생업인 역사 선생들은 자괴감에서라도 이 상황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태숙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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