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7 20:28
수정 : 2005.08.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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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홍 성공회대 아시아엔지오정보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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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17년전 1988년 8월 8일 미얀마 국민은 장기독재를 하던 군사정부와 전면전에 나섰다. 저항은 수도 양곤을 중심으로 해서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8888 항쟁은 30년만에 민주화세력들이 합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선거를 쟁취해냈다는 점에서 우리의 6월 항쟁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싹은 군홧발에 또 다시 뭉개졌다. 강제노역, 고문, 비사법적 처형, 강간, 강제이주, 소수민족 박해 등이 무방비 상태에서 자행되었다. 국제사회에서 미얀마는 법치의 부재로, 공포정치로 자유권과 생존권이 실종되어 버린 최악의 인권탄압국으로 지칭되었다.
그동안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 서방진영은 미얀마 군사정부를 비난하면서 민주주의의 회복과 인권보장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군사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였다. 나아가 군사정부는 가택연금 상태에서 풀려나 지방을 순회 중이던 아웅산 수치와 그의 지지자들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행패를 서슴지 않았다. 이른바 디페인 학살사건이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미얀마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는가? 정부는 미얀마 인권문제에 대해 ‘나토’(NO ACTION TALK ONLY) 외교로 일관하였다. ‘실리’에 밝은 일본 정부조차도 미얀마의 인권상황과 경제적 지원을 연계시키는 정책을 고려하였는데 반해 한국정부의 ‘행동’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한국정부는 국제인권단체들의 ‘추악한 기업 명단’에 올라 있는 대우인터내셔날의 미얀마 천연가스전 개발권 확보를 내심 반겼다. 그리고 오히려 ‘민주주의 세례’를 받고 한국에 들어와 노동과 투쟁으로 살아온 일부 미얀마 활동가들의 난민지위 인정을 거부하는 것으로 ‘화답’하였다.
미얀마인들은 묻는다. 한국정부가 과연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성을 소중히 여기는 시민사회의 힘으로 만들어진 정부인지, 한국이 이룬 민주주의의 성과를 미얀마와 나눌 용의는 없는지를.
동아시아는 이제 더는 인권 없는 주권을 정당화할 수 없다. 진정한 주권은 국민 개개인 인권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미얀마문제에 대한 한국의 인도주의적 접근과 우리 사회 내 미얀마 망명객들의 정치활동에 대한 법적, 제도적 보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은홍/성공회대 아시아엔지오정보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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