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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아무도 가지 않겠다는 그 길을 가려는 이에게 |
최미혜 구성다큐연구회 회장
지난 7월 <피디수첩> 작가 6명의 전원해고 사태 이후, 전국의 시사교양 작가 920여명은 그 빈자리를 대신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했다. <피디수첩>은 9개월째 불방중이다. 그런데 최근 <피디수첩> 대체 작가 1차 면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문화방송(MBC) 공고에 따르면, 2차 면접을 거쳐 10월24일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많은 생각이 오간다. 우선, 그 대체 작가 자리를 지원한 이가 누군지 궁금하다. 아니,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끝까지 누군지 몰랐으면 좋겠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그 길을, 더 정확히 말해 가지 않겠다는 그 길을, 굳이 가겠노라 나설 이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력서가 접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급기야 면접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곧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전히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현실이다.
920여명의 시사교양 작가 대표 자격으로 이 글을 쓰면서도 내내 찜찜하고 불쾌한 건,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약속과 믿음을 저버릴 누군가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흔들림이다. 이러한 일로 우리가 우리의 동료를 의심해야 하고 뜻을 같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비난해야 하는 편 가르기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전국 곳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작가들에 대한 ‘모독’이다. 물론 920여명의 서명자 가운데는 단연코 없으리라고 믿는다. 다만 서명에 함께 동참하지 않은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한뜻일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기에 충격이 더 크다.
<피디수첩> 대체 작가로 지원했다는 이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 자기만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차가운 거리에서 천막 투쟁까지 불사하고 있는 <피디수첩> 작가들의 헌신과, 장르를 불문하고 온갖 매체를 통해 글 품앗이로 함께 힘을 보태고 때때로 노트북도 잠시 접고 거리로 나와 촛불까지 드는 작가 선후배의 동료애를 모멸 차게 외면할 용기는 없으리라. 그 정도의 이성과 상식 없이 어찌 <피디수첩> 작가 자리를 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피디수첩> 작가를 하기에 자격 미달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피디수첩> 해고 작가 6명을 위해 전국의 시사교양 작가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뜻을 하나로 모았던 지난여름, 게다가 사상 유례없는 한국방송작가협회 작가 2500여명의 옥외 집회와 뜨거운 연대에 관한 기본 사실조차 알지 못한단 말인가.
프리랜서 작가에게 ‘이력’은 곧 자신의 존재감이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는 <피디수첩> 작가이기를 꿈꿔왔고, 이제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해고된 6명의 작가뿐만 아니라, 지난 22년간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선배와 훗날 이 프로그램을 맡게 될 동료, 후배 작가들에 대한 우리의 도리다. 이 사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영광스럽기는커녕 <피디수첩> 대체 작가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평생 따라다닐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굳이 그 길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피디수첩> 해고 작가 6명을 차가운 길 위로 내몰고 그들을 ‘즈려밟고’ 가는 그 길 끝에서, 과연 무엇을 얻고 싶은지 묻고 싶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작가라는 직업의 위대성을 보증하는 두 가지 짐을 능력이 닿는 한 짊어져야 한다. 그 두 가지 짐은 다름 아니라 진실에 대한 섬김과 자유에 대한 섬김”이라고. 어쩌면 갈등과 번민 속에 있을 이에게.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된 길임을 깨달았을 때, 돌아서는 것도 용기다. 돌아서면 또 다른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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