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24 19:40
수정 : 2012.10.2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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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7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을 떠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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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치 왜냐면 ‘고의냐 선의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를 읽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판결에서 ‘고의’냐 ‘선의’냐는 중요한 문제다. 먼저 법률적 쟁점에서 중요하다. 우리 형법에서는 범죄 구성요건 중 책임성 부분에서 가해자의 내부의사, 즉 고의 여부를 고려한다. 이에 따라 범죄자에 대한 죄명과 처벌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려는 고의를 가지고 폭행하여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살인죄로 처벌받지만, 그런 고의가 없었다면 폭행치사로 처벌받게 된다. 심지어 ‘미필적 고의’라고 해서, 좀더 심층적으로 사람의 심리상태를 판단하고 판결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가 적용되기 위해서도 곽노현 교육감이 다른 후보자에게 지급한 2억원이 사퇴의 대가였는지, 즉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사항이었다. 물론 부정청탁금지법의 경우처럼 고의냐 선의냐가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안과는 입법 취지가 다르다. 왜냐하면 부정청탁금지법의 취지는 비리를 통한 공권력의 남용 방지에 있지만, 이번 사안은 공권력의 남용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스폰서 검사’나 ‘떡값’ 등과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도덕적 판단도 중요하다. 법 이전에, 사회에서는 합의를 이루는 도덕적 감정이란 게 존재한다. 심지어 어떠한 도덕적 감정이 사회에 확실히 자리잡아 그에 반하는 행위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간주된다면 법으로 제정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간통죄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도덕적 행위에 동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다. 예컨대 가깝게는 선의로 시작한 봉사활동과 단순히 학점을 따려는 봉사활동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다르다. 선의인지 고의인지에 따라 도덕적 비난의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민감한 시기에 돈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자신의 선의에 대해 모든 국민들을 이해시켰다면 분명히 비난보다는 공감하는 여론이 더 컸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 사건이 여론의 외면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국민이 암묵적으로 대가성을 인정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사후매수죄의 위헌 여부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세계적으로도 이 조항이 존재하는 두 국가 중 하나가 우리나라라는 사실에 대법원의 위헌 여부 판단이 조금 유감스럽지만, 대가성을 인정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우리나라 사법부를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도덕 감정으로는 도저히 선의로 2억원을 줄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곽노현 교육감의 공과는 분명히 이 문제와 별개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상급식 전투’로 시민세력의 등장에 앞장을 선 곽 교육감의 공은, 사후매수죄를 범한 과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전자는 잘한 일, 후자는 잘못이지만 전자를 평가할 때 후자의 도덕성 문제까지 개입시킬 필요는 없다. 또 한 인간의 도덕성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편적인 사실들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도덕성은 그 개인의 일생을 봐야 그나마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경민 방송통신대 법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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