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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07 19:30 수정 : 2012.11.07 20:45

이토록 정치의 계절에 ‘여성’이 호명된 적이 있었던가 싶게 ‘여성 대통령’ 담론이 만개했다.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요?”라는 박근혜 후보의 답변은 그 기폭제가 되었다. 말인즉슨 지금 시기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 자격을 논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후진적인 시대관이라는 말일 게다. 맞다. 여기에다 “최초 여성 대통령 선출은 그 자체가 통합과 쇄신의 출발”이라고 강조한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의 발언은 이제 ‘여성 역할론’이 새누리당의 중요한 득표전략임을 드러냈다.

한발 더 나아가 박근혜 후보는 그간 ‘남성’ 정치인이 저지른 부정부패와 불신의 정치를 뒤집을 강력한 기표로서 자신이 ‘여성’임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성불평등성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으로 자신을 위치지음으로써 보통 여성들이 겪었을 삶의 고단함을 보상해줄 여성운동적 이미지까지도 차용한다.

그렇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박근혜 후보가 단지 우리 사회 1% 부자들을 대변하는 새누리당 후보였을 때는 문제가 단순했다. 그러나 ‘여성됨’을 강조하고 여성혁명을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성불평등성과 박근혜 후보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성’의 대표로 본인을 자리매김하고자 할 때,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여성’이 누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됨’ 자체가 바로 정치혁신과 성불평등성 쇄신을 약속하는 보증수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후보가 성불평등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살펴보고 판단하는 것은 이제 유권자의 몫이 되었다.

먼저 박근혜 후보는 유신시대에 2인자로서 국정에 참여했다. 그 유신체제는 ‘배고파서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와이에이치(YH) 노동조합의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 몽둥이와 해고로 대응했다. 유신은 스물두살 꽃다운 나이에 국가폭력으로 숨진 김경숙 열사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정권은 김경숙 열사가 스스로 동맥을 끊고 투신자살한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시신에는 동맥을 절단한 흔적이 없고 후두 정부를 모서리 진 물체로 가격당해 숨진 것이라고 진실화해위원회는 밝혔다.

당시에도 박근혜 후보는 유신정권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케이티엑스(KTX), 이랜드,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88CC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박 후보가 단 한번이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발언하거나 당사자를 만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유신시대에는 어려서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 뒤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줄푸세’ 공약으로 친기업 정책만을 발표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본인이 ‘여성’임을 자각한다는 것은 남성과는 다른 부드러움이나 섬세함 등 여성적 특질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 왜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조건에 놓이게 되었는지 통찰하고, 그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성평등과 사회정의적 관점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핵심이다.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여성들이 마치 정신력이 부족해서 사회에서 뒤떨어지는 것처럼 말한 것은 박근혜 후보가 유신시대에 주도했던 새마음운동과 일맥상통하는 시각이다.

이제 우리 ‘여성’들은 ‘여성’이 하나의 상징으로서 소모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자각은 바로 성평등과 사회정의, 인권 실천의 의지임을 알려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에 크게 기여했던 존 스튜어트 밀은, 투표는 ‘권리’만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얘기했다. 투표 불참은 개인적 차원의 권리가 아니라 사회정의 실현을 포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2012년 대선, 여성들은 ‘여성’ 이미지에 속지 말고 사회정의와 인권을 위해 투표하자.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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