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냐면] 엄마의 거짓말 / 하영아 |
기억에 남아 있는 아주 오래전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줄곧 엄마가 들려주시던 말씀이 있다.
“네가 아기였을 때 얼마나 예뻤는지 버스를 타거나 병원에 가면-장소는 늘 바뀌었다-거기 있는 사람들이 죄다 널 예쁘다고 한마디씩 하고, 어루만지고 그랬어. 다른 애는 쳐다보지도 않았던걸.”
자라면서는 그 말이 당연한 것인 양 여겼다. 때로는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많이 예쁜가 보다 우쭐대기도 했다.하지만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아 키워보니, 웬만한 아기는 대부분 지나가는 어른에게서 예쁘다는 말을 듣고 귀여워하는 손길을 받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상 거의 모든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는 늘 그렇게 말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반장 선거를 하는 날이나 입학시험, 입사 면접 등 중요한 시험을 보는 날이면 엄마는 늘 현관을 나서는 내게 꿈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어젯밤 꿈에 네가 용에 올라타고 하늘을 날아가더라고. 신기하지?”
꿈에 길조를 암시하는 동물이 나타났다거나, 내가 좋은 옷을 입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거나 하는 식으로 내용은 항상 비슷비슷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생기면서 뭔가 잘될 것 같은 자신감과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곤 했다. 그것은 ‘널 믿는다. 힘내!’ ‘잘할 수 있을 거야’와 같은 흔한 격려사보다는 더 무게가 실리고 당위성까지 부여되면서 내 실력과 경험에 비해 좋은 결과를 얻게 했다.
내신보다 수능 성적이 잘 나오고 시험운, 합격운이 좋았던 건 모두 엄마의 ‘용꿈’ 덕분이었다는 생각을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야 절감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엄마가 마침 ‘그 전날 밤에’ 진짜로 그런 꿈을 꾸셨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용꿈을 꾸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오죽하면 용꿈을 꾼 사람들이 복권을 살까. 나도 여태껏 단 한번도 꿈에서 용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정말 그때 그랬냐고 여쭤보지는 않았다. 다만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씀(?)을 했는지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다.
이제 학부모가 되고 보니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엄마들이 ‘세상에서 내 아이가 제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만큼의 기대와 목표를 충족시키려고, 아이들을 힘들게 몰아붙이고 부담을 지운다. 그렇지만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라는 주문 대신, 스스로 잘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엄마의 혜안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오늘은 수능 날이다. 이제 곧 시험장에 들어갈 전국의 수십만 수험생들은 초긴장 상태일 것이고,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역시 심장을 옥죄는 떨림과 걱정 속에서 오늘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수험생 모두가 만점을 맞을 수는 없겠지만, 다들 그동안 들인 노력과 수고만큼의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용꿈’의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하영아 전업주부·경기도 고양시 행신동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