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14 19:31
수정 : 2012.11.1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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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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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을 농락하고 권세를 함부로 부린 사람들의 옛일이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환관 조고의 이야기다. 생전에 온갖 아첨을 바쳤던 진시황이 죽자 허수아비 2세 황제를 세우고는 급기야 그 자리를 탐하던 조고가 황제 앞에서 많은 신하들을 떠볼 요량으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겨댔다. 이에 많은 이들은 잠자코 있고, 적잖은 사람들은 조고의 편을 들어 말이라 하고, 간혹은 정직하게 사슴이라 직언하기도 했다. 조고가 사슴이라 말한 사람을 법률로 얽어 모조리 감옥에 넣자 그 뒤로 모든 신하들은 다른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가당키나 했었을까 싶지만 그런데 그게 아니다. ‘지록위마’가 가진 단순함을 한꺼풀만 벗겨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 설명력을 발견하게 된다. 지록위마에는 객관적으로 자명한 진실을 누가, 왜 왜곡하느냐에 대한 많은 함축이 들어 있다.
<사기>의 다른 곳에서는 곡학아세의 유래가 등장한다. 지식이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기회주의적으로 자신의 소신이나 철학에 관계없이 학문을 왜곡하고 이로써 권세나 시세에 아첨하는 이들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한다. 앎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이들은 대체로 말을 쉽게 바꾸고 그런 사실을 잘 기억하지도 않는다.
어떤 이들은 바늘만한 것을 몽둥이만하다고 크게 과장하거나 제 논에 물을 댈 때처럼 자기에게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한다. 이들은 심지어 전혀 가당치 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자신의 주장에 맞추려고만 할 뿐 다른 사람들의 견해나 객관적 사실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기주장을 위해서라면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고 능히 말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 중에 착한 사람이 드물다고 갈파했다. 교묘한 말은 대개 듣기에 달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보기에 좋으므로 이들에 둘러싸인 존재는 하늘을 나는 용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고 점차 현실과 동떨어지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이솝 또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나쁜 일들이 모두 혀에서 시작된다고 경고했다. 스스로의 기회를 위해 말을 바꾸거나 억지 주장을 일삼거나 교묘하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세 치 혀의 노고로 움켜쥔 한 줌의 권세로 호랑이 행세를 하는 위인들이기 쉽다. 그들은 윗사람에게 아첨하며 겪은 굴신의 설움을 더 많은 아랫사람에게 군림함으로써 치유하려고 한다. 이들은 대개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두꺼운 얼굴에 시커먼 뱃속을 가진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 ‘후흑열전’이란 이름으로 전해 온다. 이들이 무리지어 작당을 하게 되면 사태는 가장 나빠진다. 그 모이는 마당(堂)엔 온통 검은 마음(黑)들로 채워짐을 옛 선인들은 글자(黨)로 만들어 두고두고 경고해 왔던 것이다.
선거철이다. 많은 사람들이 합치고 모이고 떠나고 흩어진다. 그들의 말은 무성하다. 우리는 한번쯤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충실하게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수록 더욱 준엄한 자기비판이 필요할 때다. 온갖 사람이 모인 조직이라면 더더욱 그런 떼들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조직은 조직대로 스스로의 여과장치를 새삼 점검해 볼 일이다.
김상섭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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