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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국립자연박물관, 늦었으나 명품을 만들자 / 이병훈 |
우리 학계와 국민이 국립자연박물관을 갖자고 열망한 지도 20여년이 지났고, 정부가 한때 3년간 투자하며 기초연구보고서 10여건을 낸 지도 15년여가 지났다. 문민정부의 이 사업이 지속되었더라면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 가운데 자연박물관 하나 없는 나라라는 치욕에서 벗어나 지금쯤 웅장한 국립자연박물관의 준공을 눈앞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국민과 학계의 간청을 외면하고 자연박물관 건립을 미뤄왔다.
국립자연박물관은 그 나라의 자연과 생태계를 국가 유산으로 미래세대에 영원히 물려주고 연구할 중앙은행이나 국립도서관과 같은 존재다. 미국의 국립자연박물관은 미국 국회의사당과 백악관 사이에 자리잡고 연간 8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영국·프랑스의 국립자연박물관도 연 300만명의 입장객을 자랑한다. 일반 자연박물관의 경우 미국엔 1000여곳, 영국·프랑스·독일 등에 각각 300~600여곳, 이웃 일본에도 150곳이 넘는다. 우리나라는 고작 10여곳에 불과하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박물관 발전 기본구상’을 내놓고 특정 지역에 설립을 추진하다가 여론 수렴이나 타당성 조사 없이 위치를 결정했다 하여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정부 예산당국은 10여년 전 이 나라의 ‘싱크탱크’라는 기관에 박물관 건립을 두고 타당성 조사를 의뢰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자 5명 가운데 자연박물관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외부에서 참여한 한 사람뿐이었다. 문화부 역시 타당성 조사를 박물관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동굴연구소에 의뢰한 적도 있다.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최근에 문화부는 국립자연박물관 건립 용역을 공모했다. 그러나 응모한 2개 단체 중 낙점된 곳은 ‘거대한’ 정부 출연기관이었고, 오랫동안 국내외 자연사박물관을 다니며 꾸준히 논문을 낸 전문가 집단은 낙방했다. 가장 전문성 있고 실적 있는 단체나 컨소시엄을 뽑는 공평무사한 심사를 간절히 바랐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 정부 출연기관에 자연박물관 연구 실적이 있는 전문가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래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요, 전문성과 원칙에 기반을 둔 투명행정 국가란 말인가? 문화부는 심사과정 일체를 공개해야 한다.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의 저서 <다윈 이후>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자연박물관에 자주 데리고 간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저명작가 헬렌 켈러 역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둘째 날엔 자연박물관에 가서 과거 자연과 인류가 어떤 과정을 밟아왔는지 보고 싶다고 토로했다. 국립자연박물관은 8000만 한민족이 우리 자연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을 가꾸는 보루가 돼야 한다.
이병훈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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