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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21 19:32 수정 : 2012.11.21 19:32

몇 년 동안 우리나라는 인공위성을 발사한 10번째 나라가 되기 위해 애절한 노력을 해왔다. 두번을 실패하고도 세번의 실패는 없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매달렸다. 모방해서 우리 것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러시아에 발사를 맡겼다. 기술이전은 계약 문구에 없고 시장가격보다 훨씬 비싼 돈을 지급했다.

왜 우리 인공위성을 러시아가 발사해야 하는가? 지난 10월 세번째 발사 연기는 우리가 잠에서 깨어날 기회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성공적’ 발사라는 말의 뜻을 모른다. 위성이 궤도에 올라가면,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자신의 업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우주탐사’ 혹은 ‘인공위성’ 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심각한 의문을 낳기도 했다. 1961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연설에서 언급한 소위 ‘군산복합체’는 이렇게 설명되기도 한다. “총, 군함, 미사일, 탱크…. 이 모든 것은 배고픈 사람들의 음식을 훔쳐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인공위성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쓰이는 위치추적시스템(GPS)도 한 예다. 우리나라도 미국도 돈을 많이 번다. 무엇보다도 이 지피에스는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지켜주는 절대적인 무기다. 이게 없으면 무인비행기는 무용지물이다. 인공위성 발사는 그 자체가 큰 사업거리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고 실패 없이 인공위성을 발사한 경우는 없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기술을 사서 인공위성을 발사한 나라도 없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베른헤르 폰 브라운 같은 독일 과학자가 있었기에 인공위성 발사가 가능했다. 옛소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모두 자체 기술개발을 거쳐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1957년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을 쏴 올리자 미국은 이듬해 곧바로 아틀라스(1단 발사체)에 이어 아틀라스 센타우르(2단 추진체)의 개발에 나섰으며, 1969년에는 아폴로 우주선으로 소련에 앞서 사람을 달에 보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로저 린치는 아틀라스 센타우르의 로켓 연료를 액체수소로 하기로 결정했지만, 미사일 개발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던 폰 브라운은 반대했다. 아폴로의 달착륙은 액체수소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나는 1977년 제너럴 다이내믹스에 들어가 크루즈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다. 그 로저 린치가 나를 그 회사에 입사하게 한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브라운과의 싸움은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미국 정치제도를 그보다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보다는 내 밑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과의 싸움이 훨씬 힘들었다. 1962년 2단 추진체가 발사대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액체수소는 힘이 있지만 아주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사고는 생중계됐다. 엔지니어들은 왜 카메라로 찍느냐고 반발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이 생중계되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지금도 소련의 잘못은 모든 걸 비밀로 했기 때문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나로호의 문제로 돌아오면 “왜, 어떻게 발사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처럼 해서는 몇 번을 실패해도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러시아는 당연히 모든 걸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위성 발사는 남의 기술을 복사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게다가 액체수소 같은 연료는 기술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 개발에 나서야 한다.

안수명 안텍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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